호명 병원 아래층을 열람하면 장례식장이 나온다 실타래처럼 뭉쳐 다니는 사람들불안한 안부가 무릎사이에서 웅웅거린다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야윈 이력이 표정마다 걸려 있다. 처방전을 들고 풀밭을 건너갈 때옆구리를 파먹다가 들켜버린 나는 급성의 대기자가 된다당신을 부르는 창밖의 튤립구름도 무거워 봄비로 건너온 걸까 아래층으로 몰려가는 한 무리의 울음이먼저 간 자의 소리를 대신 할 때아픈 자의 목록이 지워지는 순간이다 중략, 언제 올지 모르는 호명 앞에시치미를 뗀 사람들일층과 지하 일층 사이 저승과 이승사이를와글와글 지나
노루발자국 먼 길을 기워낸 재봉틀과 내가 먼지 앉은 노루발을 스스로 털어낼 수 없을 때 우리가 해 입을 수 있는 건 한 벌의 적막이다 툭하면 풀리던 실밥 같은 젊은 날들을 밑실과 윗실이 어금니처럼 꽉 물고 드르륵 한 끼니를 박았다 아이들의 교복도 공납금도 촘촘하게 박아냈다 이제는 바늘귀도 내 귀도 침침해지는 시간 다리
아침의 스타카토 독주회 알람이 새벽을 깨워요 벌컥, 찬물 한 컵에 부엌의 막이 오르면 오늘의 악보는 숙취에 맞춰 알레그로로 따라갑니다 불린 쌀의 눈금이 손등에서 자라는 동안 압력솥 연주가 팽팽해지고 멸치 한 줌에 통영 앞바다가 끓어올라요 찬 음표에 비린내가 돌지 않으려면 심벌즈 뚜껑은 닫아야 하는 법 매운 고추는
완창 육개장을 든든히 먹은 아침이다 마지막 화장을 마친 엄마가 환하다 오늘은 완창이 있는 날 막이 오르면 화장기 없는 울음만이 둥둥 떠다니는 이곳은 활활 타오르는 엄마가 배경이다 울음으로 살이 오르는 화장장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흥건해진 엄마가 늙은 딸들의 완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푸르게
불안 불안은 넝쿨 식물이다. 칡이 내지르듯이 기어가다가 아 무 나무나 잡아타고 뒤덮어버리는 것도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습성 때문이다 나무는 혼자 울지만 칡은 함께 흔들 리고 함께 꽃 피운다 약한 것들은 연대가 힘이다 어둡사리가 끼면 본능적으로 불안을 감지한 새들은 나무 가지를 들락거린다 하룻밤 새들어 사는 나무에게 불안을 넝
공갈젖꼭지 겨드랑이가 가려워 집 나간 엄마는 꿈에도 날 찾지 않아 왜 잠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쓰러뜨리는지 여러 개의 입을 가진 저녁이 몰려와 나를 불러세우네 어둠의 층계가 빨아올린 담배 맛은 나를 훨씬 어른스럽게 만들지 교복은 충분한 감옥이야 연기 안에 동그랗게 나를 밀어 넣으면 엄마는 어린애들이나 찾는 깡통 같은 거
이별은 딱딱하다 “이곳에는 눈이 내렸어 거긴 어때? 잘 지내? 벚꽃은 피었어?“ “응 피고 있어 당신 벚꽃 좋아하잖아 내가 꽉 잠가놓고 기다릴게” 봄은 오는데 당신은 여전 한지 송곳 같던 바람의 날이 둥글어지자 연둣빛 언어가 여기저기서 뛰어들었다 두고 온 집과 떠도는 집 사이 이국의 푸른 눈빛이 되어 키
서랍 서랍을 열면 오동꽃 냄새 연보랏빛 그늘이 나를 당기네 오월 엄마는 언제나 비련의 주인공 영문도 모른 채 오동나무 근처에서 자생하던 나는 속전속결로 슬픔을 레슨 받네 거문고 소리가 나는 내 몸에서 찰랑찰랑 유년이 지나가네 종다리 좁은 부리로 허공을 쪼아도 자꾸만 남아도는 봄날의 오후 덜거덕거리는 유년의 시간을 열
이방인 걸핏하면 섭섭하고 걸핏하면 서운하다 기쁨은 언제나 슬픔보다 유치하다 눈을 뜨면 버릇처럼 목이 말라 물 들이 키고 화장실 단골이 되네 낯선 객지 생활에 언제나 이방인 딱지로 갯펄처럼 질퍽이는 하루가 어떤 전쟁일지 삶의 체험 현장에 불을 켜라 하네
텃밭 이야기 식탁만한 텃밭이다 하루가 다르게 부푼 텃밭은 자주 삼겹살 먹는 저녁을 마련했다 상추를 푸짐하게 먹은 날은 찰진 잠이 왔고 때때로 술이 덜 깬 남편을 텃밭에다 불러 앉히면 다시 싱싱해져 출근하기도 했다. 고추모종 두어 그루는 이파리 뒷면에다가 촘촘하게 진드기를 키우느라 일상이 오그라들었고 무당벌레 몇 마리가 그
물 맑고 바람 달콤한 영덕 햇빛 곱고 하늘 밝고 대게 가고 싶은 대게고장 영덕 여기는 다양한 꿈에 정류장 오는 사람도 반갑고 가는 사람 아쉽고 4계절 형형색색으로 물들며 시간을 보내는 곳 여기는 즐겁고 행복한 우리에 천국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 풍성 힐링 전당 눈에 담고 마음에 담은 특별한 향기 마을
톡톡
톡톡......
뉴스 톡톡
춘분이 지났다. 길고 어두웠던 밤을, 따뜻하고 환한 낮이 좀 더 이기려는 교차의 순간이 지난 셈이다. 이제는 하루하루 길어질 태양의 시간이다. 겨울의 장막을 부산스럽게 열어젖히는 봄의 등쌀에 길을 나선다. 사그락사그락 대지는 간밤에 내린 보슬비에 뭇 생명들의 몸 푸는 소리 요란하다. 사부작사부작 자연이 주는 생기와 윤기로 늘어지게 기지개 켜느라
그녀의 밑천은 무한하여 측정불가능 하다. 강철 같은 멘탈을 지닌 터라 넘보는 이에 빼앗길 염려도, 견고하여 닳아 거들날 일도 없다. 더욱이 그녀는 그 어마 무시한 밑천에 틈만 나면 기름칠을 하고 갈고 닦아 나날이 빛을 발하는 중이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주의를 들썩거릴 만큼 작지만 거대한 그녀의 밑천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 밑천으로 사는
빠르게 돌아가는 숫돌위에 불빛가루가 섬광처럼 번득인다. 숫돌이라는 형틀위에서 멱살 잡힌 쇠붙이가 제 살 깎아내는 형벌을 받고 있다. 쌔액쌔액 무디어진 칼이 벼려지는 섬뜩한 경고음에 철물점 쇠붙이들도 일순 긴장한다. 칼자루를 쥔 철물점 아저씨의 빨강 장갑의 손과 숫돌이 칼과 현란한 막춤 한 판을 벌이는 중이다. 리드미컬하게 좌우를 잽싸게
지난 설연휴에 고향인 포항에 다녀왔다. 홀로 계신 어머니를 뵙고 왔다. 작년 가을에 추석귀성을 못했기에 이번에도 안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대구 포항간은 가깝기 때문에 귀성이라고 말하기도 좀 어색한 거리긴 하다. 명절이 아니라 평일에도 다녀갈 수 있는 거리라서 가끔 주말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명절에 가는 것은 다른 날에
교토의 혼노지(本能寺)에서 아케치 미츠히테에 의해 살해당한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조선을 침략해 임진·정유재란의 7년을 끌다 1598년에 병사하고 전쟁은 끝이 났다. 관동의 영유자이며 5대로(大老)의 우두머리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회유책인 ‘사혼(私婚)금지’와 그의 아들 히데요리(당시
시샘 달(2월)이 붉디붉게 물들고 있다. 혹한 속에서도 불꽃처럼 피어올랐던 동백꽃 진자리에 선홍빛 선혈鮮血이 낭자하다. 차디찬 땅바닥에 온전하게 송이째 떨어진 꽃망울들이 시리도록 애처롭다. 한밤 영혼의 온기를 머금고 겨울 숲속에서 새벽태양처럼 달아올랐던 생명이 아니던가. 눈송이 흩날리는 겨울, 그리움에 사무쳐 겨울 꽃으로 환생했다 떨어진 저 꽃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