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협 극단 가인(佳人)대표·포항아트센터극장장

봄날처럼 따스한 주말 토요일 저녁. 시내 모 커피숍에서 ‘연극패 가인’을 이끌고 있으며 2005년부터 2015년 사이 7년간 포항연극협회장을 맡은 적이 있는 이한협 대표(54)를 만났다.

이 대표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웅변을 하면서 글도 썼다고 한다. 그러다가 고교 3학년이 된 어느 날 문득 그동안 내가 뭘 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생각 끝에 신학기가 시작되자 학교동아리 연극반에 들어갔다. 조연을 맡아 6개월간 연습을 한 후 그해 10월초 공연을 했지만 연습기간에 비해 아쉽게도 2회 공연으로 끝났다고 했다. 공연이 끝나고 컴컴한 밤 혼자 집에 가는 길에 왠지 모를 눈물이 나고 자괴감이 들었다며, 연극으로도 채우지 못한 부분이 가슴에 잠재가 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고 지난날을 떠올렸다.

이후 1983년 포스코에 입사하면서 연극동아리 ‘예맥’에 들어가 서라벌예대에서 연출을 전공하고, 산울림 극단에서 활동을 한 김천중 연출가를 만났다고 한다. 김천중 연출가는 극단을 카리스마있게 잘 끌고 가셨다고 했다.

이 대표는 예맥의 초창기 멤버는 아니었지만 당시 30여 명의 배우들이 열정을 가지고 연습했으며, 정기공연과 연말이면 불우이웃돕기공연을 합쳐 2차례의 공연에 그쳐 작품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때만 해도 예맥에는 여배우들이 많았고 남자배우들보다 감수성이 앞서고 예민했다며 이 대표가 맡은 역할은 비중이 적은 역이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사내 연극동아리인 예맥의 활동이 제한되어 있어 소극장을 열어 바깥에서도 연극을 하겠다는 배우 15명과 함께 뜻을 모아 자신이 하고 싶은 역할을 하면서 잘하는 배우를 캐스팅해서 하겠다는 각오로 1988년 광복절에 자생적 민간극단 ‘늘푸른공간’극단을 창단했다.

이후 10월 3일 개천절에 경북 최초로 민간 연극전용 소극장 ‘연극무대 늘푸른공간’을 개관하면서 연극의 유료공연화를 주도했으며 첫 작품 ‘장똘뱅이’를 무대에 올렸다.

1995년에 ‘극단 가인’으로 개칭하고 연극전용 소극장 ‘삼통 아트홀’ 개관, 2006년 연극전용 소극장 ‘포항아트센터’ 개관. 2016년 현 북구 상원동에 ‘포항아트센터’를 이전해 재개관했다.

극단 가인이 그동안 활동한 기간은 만29년으로 정기공연 60회를 포함 총90회 공연을 마쳤다고 한다. 무대에 올린 창작극은 ‘열린 숲’, ‘녹색 겨울’, ‘아내의 손님’, ‘구룡포 프리덤’, ‘동해야, 청청아!’, ‘병풍바위에 파랑새 날다’, ‘느즈매기 양설령에’ 등이 있다.

이 대표는 “내년이면 창단 30주년을 맞는데 ‘연극패 가인’을 운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경제적인 부분이었다.”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 단원들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매회 공연이 끝날 때마다 제작비 부담이 반복돼 누적되면서 감당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공연 시 객석을 꽉 채울 때도 있었지만 1명일 때도 있었다.”며 그동안 극단운영의 어려웠음을 토로했다.

극단 운영이 어려워 배우들에게 출연료 한 푼도 못줬다. 공연수입은 월세 내기에도 바빴다. 1997년 삼통 아트홀에서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작품공연을 마치고, 출연료를 조금이라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금은 어렵고 배우들에게 당시 시가로 2만 5천원 정도 되는 손목시계를 주고, 스텝에게는 7천원 정도 되는 파카볼펜을 주었더니 단원들 모두가 좋아했다면서, 그것을 주면서 정작 대표 것은 빼라며 1개라도 줄여 돈이 적게 들도록 했다고 한다. 평단원이었으면 1개 달라고 조를 수도 있었지만 주어야하는 입장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며 그때는 눈매가 시큰해지면서 서럽고 눈물이 났지만 어렵더라도 챙겨줄 수 있어서 기뻤고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극단 ‘가인’은 그동안 후원자 1명 없이 순수하게 연극작업만 미치도록 했다. 이벤트성 스폰은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후원자 없이 대표 사비로 운영하면서, 공연수입이 들어와 출연료를 줄 때는 지난날 손목시계나 볼펜을 줄 때와 같은 느낌을 못 느꼈다고 밝혔다.

연극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시민의 시선이나 각도가 연극은 재미없고, 졸리고 따분하다. 공연은 공짜라는 생각을 불식시키는 것이었다.”며 “지금은 연극이 무료공연이라는 시민의 의식이 깨졌다. 연극은 라이브이기 때문에 소극장에서는 화려한 무대를 보여주는 즉시성에서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시민들의 연극관을 바꾸는 것이 힘들었다. 이를 극복하기가 많이 어려웠지만, 이제는 연극이 재미있다는 것을 연극인 스스로가 보여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자본의 논리가 대규모 뮤지컬 등으로 끌려가고 있고, 시민밀착형 명분을 이어나가야 하는데 시민호흡과 정서를 같이하는 부분이 짓밟혀가고 있는 것이 연극계의 현실이다. 그는 “배우와 관객이 공연을 함께 즐겨야 하는데 관객이 가만히 앉아서 공연을 누리려고만 해서 안타깝다.”며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완성해야 한다. 이제는 관객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고 배우와 관객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선행조건은 배우들이 잘 파악해야 한다.”면서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는데 조심스럽다.”고 했다.

연극이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무엇인지를 묻는 말에 그는 즉시 ‘생활이다’고 답했다. “일상의 대화에서 ‘너 지금 연극하고 있냐?’는 말을 자주 한다. 삶 자체가 연극이다. 연극만큼 진실한 장르가 없다. 여타 예술은 덧칠하고 감추고 조작하기도 한다. 연극도 때로는 가리지만 내면은 못 가린다. 궁극적으로 인간이 보여주는 예술이기 때문에 진실하지 못하면 진정한 연극이 될 수 없다. 배우, 연출자, 관객의 생활이고 그 작품의 일원으로 연극의 요소로서 있는 것이다.”며 “이방인의 태도가 아닌 생활인으로서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지자체의 예술관련 부서나 해당 상임위 시의원은 지역에서 어떤 문화예술 활동이 벌어지고 있는지 찾아가서 보고, 듣고 실상도 파악해 예술가에 대한 지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폼 나는 행사만 찾는다.”며 안타까워 했다.

아울러 그는 “문화예술 관련 내용을 알려면 실제 공연을 보고, 화실이나 연주회 등을 찾아 실상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데 모르고 있다. 예술현장을 찾아 실태를 파악해 지원할 일이 있다면 지원해주고 불필요한 간섭이 없어야 한다. 예술가들이 배부른 사람은 없다. 소프트웨어를 봐야 하는데 외형을 너무 중시한 나머지 내면은 못 따라가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이한협 대표와 두어 시간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 문득 한 사람의 의미 있는 시작이 파동과 공명을 일으켜 고리와 고리가 이어질 때,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힘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연극패 가인’이 시민들의 메마른 영혼에 시원한 소나기가 되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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