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된 경북 경산 문명고등학교 학부모들이 경북도교육청을 상대로 낸 연구학교 지정처분 효력정지(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이 문제가 새국면을 맞고 있다.

대구지법 제1행정부(손현찬 부장판사)는 지난 17일 문명고 학부모 5명이 제기한 효력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판단 이유를 밝혔다.

학부모들은 지난 2일 연구학교 지정 절차에 중대한 위법이 있다며 본안 소송 격인 ‘연구학교 지정처분 취소소송’과 함께 이 소송 확정판결 때까지 교과서 사용 중지를 요구하는 효력정지 신청을 낸 바 있다.

당장 경북도교육청은 즉각 항고할 것이라고 밝혀 이 문제가 결국 법원의 몫으로 돌아갔다.

경북교육청은 향후 본안 소송에서도 국정 역사교과서 활용 취지와 목적을 충분히 설명해 문명고가 연구학교로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문명고는 이같은 법적 판단이 완료될 때까지 파행적인 역사교과서 수업이 불가피하게 됐다.

법원이 효력정지 신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문명고는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국정교과서로 역사 교육을 할 수 없다.

문명고가 전국 유일의 국정교과서 연구학교였던 만큼 국정교과서를 수업에서 주교재로 사용할 학교는 단 한 곳도 없게 된 셈이다.

사업비 44억원을 들여 만든 교과서가 결국 도서관 비치용이나 교사 참고용 자료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에 대한 학생·학부모·교사 등 교육 현장의 반발이 워낙 컸던데다 정부 또한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강행한 결과다.

이전의 검정교과서가 ‘좌편향’ 논란을 빚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가 단일한 역사관을 주입하는 형태로 교육하겠다는 것은 유신 시절로의 회귀라는 비판이 더 거셌다.

박근혜 정권이 굳은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과제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교육적 목적이 아닌 정치적 목적을 위한 국정화라는 지적도 컸다.

각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강행한 탓에 국정교과서는 편찬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잡음을 만들었다.

교육부는 2015년 11월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 발행 고시를 하고 곧바로 교과서 제작에 들어갔지만 집필진 명단과 편찬기준은 이듬해 11월 교과서 현장검토본이 나오고 나서야 공개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교육부는 2017년부터 전국 중·고교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사용하도록 하는 방침을 지난해 말 다소 바꿨다.

하지만 희망 학교를 연구학교로 지정해 교과서를 주교재로 쓰게 하고, 2018년 3월부터는 국·검정교과서를 학교가 자율적으로 선택해 사용할 수 있게 하면서 땜질식 처방에 급급했다.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간 것처럼 국정교과서도 교과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참고자료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그동안은 물론, 앞으로도 문명고 교사 및 학생, 학부모들이 받을 상처는 누가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교육당국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