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수 정경팀장·부국장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조기대선이 확정되면서 대선 후보들의 빨라진 발걸음만큼이나 말이 거칠어지고 있다. 거의 공해수준이다.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 후 60일 내로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시간적 제약으로 검증의 기회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선 주자들의 공약이나 정책, 비전, 철학보다 ‘네거티브’가 선거판을 흔들 공산이 크다. 이런 틈새를 교묘히 파고들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막말을 쏟아내는 정치인이 늘어나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최고 지성인을 뽑는 것이 아닌 만큼 대선 주자들 간 다소 거친 말들을 주고받을 수는 있다. 정책이나 공약을 놓고 토론 하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자신의 선명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은 시정잡배들에나 어울릴 행동이지, 대한민국을 이끌고자 하는 정치인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파면을 지켜본 국민들은 대선주자들의 거친 언행을 보면서 정치 혐오증을 느낄 만하다.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는 막말이 효과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막말로 쌓아올린 지지율은 사상누각이다. 잠시 이목을 끌 순 있지만 종국에는 지도자의 자질 문제로 연결될 뿐이다.

흔히 사람들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막말의 대가로 기억한다. 트럼프는 바닥에서 시작해 상승세를 타더니 쟁쟁한 주자들을 물리치고 공화당 후보가 됐고, 본선에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

트럼프가 막말로만 대통령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자리 창출, 국익 우선주의 등 자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꿰뚫고 있었기에 대(大)역전 드라마가 가능했다고 본다.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쳤다. 그런 그가 대통령이 된지 두 달여 만에 탄핵론에 직면해 있다. 이런 급전직하도 없다. 불통의 리더십이 화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닐 고서치 연방대법관 후보자가 최근 인준 청문회에서 “어느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 미국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라며 트럼프의 ‘반(反)이민’과 고문부활, 낙태금지 등에 반기를 들어 탄핵론에 불을 지폈다.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트럼프 캠프의 러시아 내통 의혹’을 끝까지 수사할 것임을 밝혀 트럼프를 코너로 몰고 있다.

대통령 취임 서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트럼프 탄핵론이 나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불장군에게 미래가 없음을 웅변한다.

트럼프 얘기를 길게 한 이유가 있다. 우리 대선 판에서도 ‘홍트럼프’란 수식어를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주자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홍준표 경남지사 얘기다. 그는 대선출마 선언한 지 1주일 만에 자유한국당 후보 경선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며 ‘보수의 대표선수’가 된 느낌이다. 현재 한국당 뿐만 아니라 바른정당 주자를 합쳐도 홍 지사가 선두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스트롱맨(강력한 지도자)'이 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홍 지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지도자들은 소위 말하는 스트롱맨이다. 극우 스트롱맨이 지배하는 이 세계를 좌파정부가 탄생하면 대한민국 생존의 길이 있겠는가”라면서 보수층을 자극했다.

스트롱맨도 좋지만 홍 지사의 말은 듣기에 거북한 편이다. 홍 지사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0.1%도 가능성이 없지만 유죄가 되면 노무현 대통령처럼 자살하는 것도 검토 하겠다”고 말해 비난을 샀다. 본인은 “팩트다”고 강변했다.

홍 지사는 앞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겨냥해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며 “바로 옆의 비서실장이 그 내용을 몰랐다면 깜도 안 되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같은 당 경선 후보인 김진태 의원을 향해 “걔는 내 상대가 아니다. 앞으로 애들 얘기는 하지마라”고 비하했다가 막말 2인자라면 서운해 할 김 의원으로부터 “뱀 장수 같다”는 평을 들어야 했다. 도긴개긴이다.

홍 지사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막말로 구설수에 올랐다. 일부는 복잡한 사안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일갈하는 ‘홍준표식’ 어법에 시원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홍 지사가 경선 초반 전략적인 막말로 강성 보수층에 대리만족을 안겨준 대가로 지지율을 끌어올렸다면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 결코 고집불통이 강한 리더십이 아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국민들을 통합하고 포용하는 바른 리더십이다.

이제 홍 지사는 어설픈 트럼프 흉내는 그만두고 ‘쾌도난마’의 언어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공약을 제시해주길 바란다. 그게 보수 지도자로서 성공하는 지금길이다. 국가를 경영하겠다는 사람들이 혼란한 정국 때문에 심란한 국민들을 보듬지는 못할망정 귀를 어지럽혀서 되겠는가. 무릇 지도자의 말은 품격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인격이고, 국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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