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미꾸라지 잡는 통발, 참새 잡는 그물, 다슬기 잡는 틀 있습니다"

동네 어구 점 창문 종이에 쓰인 글귀다. 바닥을 싹싹 긁어 움직이는 것들은 모두 싹쓸이해 잡을 수 있다는 ‘후리 망’ 전문이라고도 쓰여 있다. 마치 걸리기만 하면 모조리 잡고 말거라는 어떤 결기 같은 것도 문구에서 느껴진다. 다양한 망 종류를 파는 그 집은 좁은 뒷골목에 위치해 있다. 햇살 좋은 날. 나이 지긋한 주인은 복잡한 골목한쪽 길게 그물을 펼쳐놓고 꼼꼼히 손질하거나 말렸다. 아무리 많은 것들이 걸려도 찢어진 부분이 있으면 헛수고라면서.

좋은 재료로 만들어진 다양한 망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넓은 들판에 강을 끼고 논농사를 많이 지었던 나의 유년시절. 아버지는 농번기가 끝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헛간 깊숙이 넣어 두었던 통발과 멍석, 소쿠리 같은 것들을 꺼내 손질했다. 주로 지난 농번기 때 많이 사용해 닳거나 헤진 곳을 보수했다. 사리나무나 대나무로 얽기 설기 엮은 통발이나 소쿠리는 다시 깁었다. 통발은 적당한 크기의 미꾸라지만 담기라고 너무 촘촘하지 않게, 소쿠리는 알곡들이 새나가지 않게 단단하고 촘촘하게 수리 했다.

겨울이 깊어지면. 하릴없이 심심했던 동네 코흘리개들은 우리 집 마당 한켠에 모여 앉아 참새 잡이를 했다. 대추나무 아래 보리쌀을 한 움큼 뿌린 다음, 그 위에 아버지가 잘 기워놓은 소쿠리를 나무 가지 위에 얹고 실로 나뭇가지를 뺄 수 있게 연결한 다음,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시간이 지나 참새가 보리쌀을 먹으러 오면 그때 잽싸게 소쿠리에 연결된 나뭇가지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눈치 빠르고 잽싼 참새들은 아이들이 기다리다 지쳐 졸기라도 할라치면 ‘나 잡아봐라’ 하면서 재빨리 보리쌀만 먹고는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뒤늦게 들어와 눈치 없이 머뭇거리던 놈들은 갇혀 구이 신세가 되었다. 얼굴 여기저기에 영양부족으로 허연 마른버짐 꽃이 핀 아이들의 영양 간식이 되어주었던 참새 잡이도 잘 기운 소쿠리 덕이었다.

보리모개마다 토실토실 살이 오르고 보릿대의 몸 비비는 소리가 달곰 싹싹하면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되었다. 들판의 방죽 물이 차란차란 일렁이면, 물길이 내려가는 곳에 길고 좁다란 통발을 묻어 졸졸 흐르는 낙수에 미꾸라지를 잡았다. 무논에 푸른 앞산이 떠억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물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미꾸라지의 습성을 이용해 둠벙이나 도랑의 가장자리 곳곳에 통발을 깊숙이 묻어두기도 했다. 이튼 날, 밤새 가장자리를 맴돌던 미꾸라지가 통발에 들어오고 건져오기만 하는 간단한 방법이었지만, 한 번도 통발이 찢어져 들어온 미꾸라지가 새나간 적은 없었다. 장마철이면, 통발 든 아버지를 따라 논두렁길을 발밤발밤 걸어 다녔던 그때. 먹을 것이 부족했던 이들의 고마운 보양식이 되어주었던 미꾸라지 잡이 역시도 통발이 있어 가능했다.

검질기고 억척스러운 풀꽃들이 강둑에 지천으로 피어 절정을 이루면, 아이들은 멱을 감기 위해 강으로 내달렸다. 해질 무렵, 바위 밑동에 숨어 있다가 성질 급하게 스물스물 기어 나오는 다슬기를 틀이 없어도 손으로 잡아 고무신 가득 담아왔다. 어머니는 모아두었던 다슬기를 삶아 부드러운 호박잎을 듬뿍 찢어 넣고 된장국을 끓였다. 무쇠 솥뚜껑이 들썩거리며 연신 구수한 냄새를 내 뿜으면 누렁이도 킁킁거리며 슬슬 부엌을 맴돌았다.

우리는 그물처럼 얽어 만든 여러 종류의 망을 만들어 삶에 이용하고, 그 같은 사회를 형성해 살아간다. 또한 그물처럼 얽힌 사람과 사람사이의 연결망 속에서 서로를 신뢰하며 살아오고 일상을 버틴다. 네트워크로 많은 정보나 의견들을 공유하여 질적으로, 양적으로 우리의 삶도 한층 풍족해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때로는 잘못된 관계의 망이 조직적인 부패를 낳기도, 분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촘촘하게 짜인 그들만의 무법천지인 망 위에서 뛰고, 뒹굴며, 즐기다가 마침내 한 귀퉁이가 찢어져 떨어질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어구집 주인은 말했다. 아무리 많은 것들이 걸려도 찢어진 부분이 있으면 헛수고라고. 한치 앞도 모를 불안한 세상에 살고 있다. 얼기설기한 망으로 바람이, 물이 지나는 것처럼 소통이라는 찢어지지 않는 단단한 관계망을 형성해 신뢰로 이어간다면 모두에게 평안을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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