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형/상무이사편집국장

침몰 3년 만에 23일 처음으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 선체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숨을 죽였다.
지난한 기간동안 전 국민은 왜 세월호가 조기에 인양될 수 없었는 지에 의구심을 가졌다.
다행히 이날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를 보면서 온전한 인양을 통해 그간의 의혹을 불식시키기를 염원했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도 이날 새벽 TV 화면을 통해 세월호의 모습을 보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가족들은 인양 관련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차디찬 바다 속에서 ‘엄마 아빠’를 불렀을 아이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전을 맴돌았을 것이다.
“이렇게 쉽게 인양할 것을 왜 3년이나 끌었나”라며 정부에 대한 격한 불신을 쏟아내기도 했다. 사고가 정치적으로 이용된 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도 했다.

2014년 4월16일 진도 앞 바다에 가라앉아있던 세월호가 1073일 만에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 23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 3년 전 그날처럼 빗방울이 떨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항구’였다.
세월호가 온전히 올라오길 바라는 간절한 발길이 이어지면서 미수습자 9명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본 뒤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 TV 화면에 잡혔다. 9명 모두 물에서 나와 가족들에게 꼭 돌아가길 염원했다.

피해가 가장 컸던 단원고에선 학생 4명과 교사 2명이 긴 시간을 바닷속에서 기다려왔다.
수학을 유독 좋아했던 조은화(사고 당시 2학년 1반), 유치원 선생님이 꿈이었던 허다윤(2반), 만능스포츠맨이었던 박영인(6반), 기타를 잘 쳤던 남현철(6반), 그리고 끝까지 학생들 곁을 지켰던 고창석 양승진 선생님.
가족들과 제주도의 새집으로 이사 가던 중 사고를 당한 미수습자 중 나이가 가장 어린 권혁규(사고 당시 7세)군과 아버지 권재근(당시 51세)씨, 그리고 1년 뒤 제주도로 이사 올 아들의 짐을 싣고 가던 중 사고를 당한 이영숙씨. 이제 이들 9명은 온전히 가족에게 돌아갈 때가 왔다.


세월호가 육지로 올라오면 인양의 최우선 목표인 미수습자의 온전한 수습과 사고 원인 규명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수습자 수습이다.
‘반드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 버텨온 3년 세월. 이제 아들, 딸, 남편의 모습 그대로 가족에게 돌아올 것이다.

또한 사망자 295명과 미수습자 9명 등 희생자 304명의 유품을 선체에서 안전하게 반출·세척하고 분류해 유족에게 전하고 소유자가 확인되지 않아 바로 전달할 수 없는 경우 안전하게 보관하는 작업도 이뤄진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참사 진상규명이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관계자들은 환영과 함께 아쉬움을 드러냈다.
특조위는 인양 이후까지 조사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입장을 냈지만, 박근혜 정부는 거부했다. 법령 해석을 앞세워 지난해 9월30일을 마지막으로 특위를 해산했다.
다행스런 것은 선체조사위원회 특별법이 최근 공포·시행됨으로써 합리적으로 조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왜 세월호 인양을 미뤘을까”라는 의구심은 여전하다는 점에서 조사위의 역할에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돼 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검찰의 수사를 받은 다음날 세월호가 전격 인양된 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란 의구심이다.
하루 만에 올라올 것을 3년 동안 바닷속에 그대로 뒀는지 안타깝고 화가 난다는 것이 국민들의 목소리다.

하지만 지금은 세월호 인양 작업이 차질 없이 끝나 미수습자를 수습하고 선체조사를 제대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한 때다.
선체조사위가 빨리 꾸려져서 조사 방향과 미수습자 수습을 위한 방안 등을 논의해야 한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더 이상의 의혹을 사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대선정국을 맞아 정치권은 세월호를 더 이상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어떤 시도도 중단해야 한다. 3년동안 차디찬 바닷 속에서 침묵해 온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 및 국민들을 위로하는 일에 나서야 할 때다.“엄마 아빠가 미안해, 이제 온전히 집에 가자”란 3년의 한이 풀리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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