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팀장·영화 '암살'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세워졌다. 3·1운동을 계기로 자주독립을 위한 정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이 임명됐다.

임시정부는 국내외의 독립운동세력을 규합하고 민족의식고취와 인재육성, 무장투쟁, 외교활동 등을 전개하며 항일 독립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광복군을 창설해 태평양 전쟁에서 대일 선전포고를 하는 등 조국광복을 위한 투쟁을 했다.

1932년 윤봉길의 홍커우 공원 폭탄 의거 이후에는 항저우(1932)·전장(1935)·창사(1937)·충칭(1940) 등지로 청사를 옮겨 다녔다. 윤봉길 의거의 배후가 자신임을 밝힌 김구 선생은 당시 60만원, 현재 200억에 달하는 현상금이 걸렸다. 김구와 임시정부는 일본경찰을 피해 상하이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피난처였던 자싱도 안전하지만은 않았다. 제대로 된 물자와 자금도 없이 일본 경찰들의 눈을 피해 춥고 좁은 배에서 잠을 청했다.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은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했다. 백범 김구와 의열단 단장 김원봉이라는 실존 인물들을 통해 항일운동 상황을 보여준다. 안옥윤과 염석진, '상하이 피스톨'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등장시켰다. 친일파 암살 작전을 둘러싼 독립군과 임시 정부 대원, 그들을 쫓는 청부 살인 업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중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조선 주둔군 사령관과 친일파 ‘강인국’(이경영)을 암살하는 작전을 꾸민다. 임시 정부의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은 이 작전을 위해 일본 쪽에 노출되지 않은 대원 세 명, 즉 한국 독립군 제3 지대 저격수 ‘안옥윤’(전지현)과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 등을 부른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이들 대원을 노리는 인물이 살인 청부 업자를 고용하고, 살인 청부 업자인 ‘하와이 피스톨’(하정우)과 ‘그의 파트너’(오달수)는 대원들을 뒤쫓는다.

항일운동 현장에 몸을 던졌으나 역사에는 이름이 남지 않은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두드린다. "이름도, 이야기도 남기지 못한 독립군들의 삶"을 잘 그려냈다.

180억 원을 투입해 만든 블록버스터로 전지현과 이정재, 하정우 등이 주연을 맡았다. 관객 수 1천2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역대 관객수 7위에 랭크됐다. 2015년 제36회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기술상을, 제52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전지현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최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두고 평가가 갈리고 있다. 국정교과서 편찬을 주도한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1948년 건국설을 주장하면서다. 국정 역사교과서에서 기존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이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뀌었다. 1948년을 건국으로 기념하게 되면 친일파들은 건국의 공로자가 된다.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계열 인사들이 배제돼 이들의 독립투쟁과 해방 후 좌우합작을 통한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 역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게 된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함이 명문화 돼 있다. 조국을 되찾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27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냈다. 순국선열들의 각고의 노력과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대한민국은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8주년을 맞았다. 목숨을 걸고 독립 투쟁을 펼쳤을 그들의 마음을 폄훼하는 세력은 지탄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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