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미 소리마당 국정국악원 원장

음악은 기호로 적거나 마음에 담아 두는 방법으로 전해진다. 대개의 서양 음악은 기호로, 동양 음악은 마음과 입으로 이어왔다. 두 방법은 그 음악을 즐기는 데서 우선 큰 차이가 난다. 마음속에 담아 둔 음악은 길게 하고 싶으면 길게 노래하고, 시간이 없으면 빨리 끝낼 수 있다. 청중의 반응이 좋으면, 예정에 없던 가락을 더 넣을 수도 있다. 바로 즉흥 음악(卽興音樂)이다. 이런 즉흥 음악을 ‘자루 음악’이라고 하는데, 넣는 물건에 따라 모양이 길쭉하게도, 둥그렇게도 되는 자루처럼 듣는 이나 연주자의 능력과 흥취에 따라 늘 새로운 음악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음악이 자루 음악이라면, 이렇게 악보대로 연주하는 서양 음악은 ‘상자 음악’이다. 자루는 크나 작으나 그에 맞게 물건을 고루 담을 수 있지만 상자는 그렇지 않다. 밀가루를 넣으나, 책을 넣으나 상자는 원래 모습을 유지한다. 그래서 상자는 미리 용도를 생각하고 치수를 정확하게 재어 만든다. 이렇게 한 번 만들어진 상자에 다른 물건을 넣으려면 쭈그러뜨리거나 자리가 남거나 해서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 서양 음악은 이렇게 치밀하게 계산된 형식 속에 갇힌 냉정한 이성(理性)의 음악이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악, 현암사, 2007. 6. 20)

우리음악은 듣는 사람의 귀맛에 따라 자유자재로 자루 음악의 묘미가 있다. 짧으면 짧은 대로, 길게 하고 싶으면 길게 이리 저리 둘러 쳐도 좋다. 목소리 또한 맑은 소리는 청아해서 좋고 쉰 듯한 소리는 구성져서 듣기 좋다. 애잔한 노랫소리에도 추임새가 나오는 것 또한 우리음악의 묘미일 것이다. 이 형편 저 형편 어디에도 다 맞는 것이 우리 음악이며 살아서 꿈틀대는 느낌의 공감대가 있다. 자루 음악은 반드시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어야 하고, 같은 선생님에게 배워도 제자마다 전혀 다른 음악이 나온다. 이 또한 우리음악의 멋이라면 멋이다.

상자 음악이니 자루 음악이니 하는 구분은 어떤 것이 더 나은지를 겨루기 위한 것은 아니다. 제 각기 장단점이 다 다르고 각자의 위치와 역할이 있다. 문서화 하지 못하고 악보로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은 우리음악에 비하여 서양음악은 악보화 되어 배우는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교수법이 잘 정리되어 있는 점 또한 보존하고 계승하는 의미에서는 뛰어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다른 면으로 볼 때 이런 점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음악을 악보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즉흥 연주의 능력을 잃게 되고 퍼 주는 밥만 먹을 수밖에 없는 형상이 될 수 도 있다. 우리 음악의 최대의 장점인 시김새를 유연성 있게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거문고 산조의 한갑득(韓甲得) 명인은 현재 음악 공부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요새는 문화재 지정이니 뭐니 해서 선생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하라고 하지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여. 선생한테는 기본을 배우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지 재주껏 편곡도 하고 창작도 해서 타야 좋지, 밤낮 배운 대로만 허면 그건 밥만 먹고 똥만 싸는 꼴이지…….”

우리음악은 자루음악답게 그 장점은 장점대로 살리며 취향이 달라지는 현대인의 귀맛에 조금씩 발맞추어 체계 있는 문서화를 정착시켜 나가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벌써 4월이다. 새벽녘 안동으로 가는 길은 벚꽃이 활짝 핀 도로를 지나면 먼 산에 진달래가 보이고 이어 막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산허리를 감돌아 멋진 풍경을 그려 낸다. 돌아오는 길은 황홀한 석양에 노래 한 소절을 붙들고 오면 금세 포항에 다다른다. 피로가 확 물러간다. 역시 계산 없이 자유자재로 부르는 우리 소리가 좋기는 좋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길게 부르고 숨이 차면 쉬어 부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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