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언 경산시선거관리위원회 사회복무요원

2017년 3월 10일, 헌법 재판소는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했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한민국은 지금 어느 때보다 어지럽다. 혼란한 시국에 국민들의 마음마저도 갈라져 버린걸까. 탄핵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통합과 결속보다는 대립과 비방이 정치권을 가득 메우고 있다. 태극기와 촛불의 대립이 국민들에게 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고 대선후보들은 자신의 지지율을 올리기보다는 다른 후보의 지지율을 깎아내리는 네거티브 선거운동에 더 치중하는 모양새다. 당장 언론의 보도 프레임만 보아도 국민적 분열과 정치권 내의 비방에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우리가 사로잡힌 병적 증상에 대한 방증이다. 물론 민주주의는 시끄러워야 잘 돌아가는 제도다. 그러나 대립과 비방으로만 시끄러운 민주주의는 파멸의 길에 이를 뿐이다.

현 시국을 극복할 지도자는 남들보다 ‘덜 못해서’가 아니라 ‘더 잘해서’ 뽑아야 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제 유권자들이 정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대선후보들의 입에 발린 말이나 그들의 인기가 아니다. 합리적인 의심을 갖고 미래의 지도자를 가려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그들의 공약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으며 우리 사회에 보탬이 되는지가 후보들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포퓰리즘(popularism:인기위주)에서 폴리시즘(policism:정책위주)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매니페스토 운동이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길 바란다. 매니페스토 운동은 유권자와 시민단체가 목표 추진 우선순위, 이행방법, 기간, 재원조달 방안 등의 평가기준에 따라 후보들의 공약에 점수를 매기는 행위를 의미한다. 매니페스토 운동은 후보자에 대한 일관성 있는 기준을 제시하여 선거 중 쉽게 일어날 수 있는 포퓰리즘, 감정적 투표, 폭력적 집단선동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나아가 앞으로 당선될 대통령의 공약 이행의 과정에서도 감시와 견제의 기능을 할 것으로 보인다.

매니페스토 운동은 크게 세 가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첫 번째는 후보자의 공약의 현실적인 방안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당선 이후의 공약 불이행에 대한 책임소재를 명확히 물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탄핵 이후 조기대선으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짧은 시간은 역사라는 물줄기의 큰 변곡점이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남은 기간 동안 유권자들은 미래세대에 대한 의무감을 가지고 후보자들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이 검증의 시간에 매니페스토 운동이 시금석으로서 그 위치를 분명히 하기를 바란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역사가 되풀이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 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역사적 비극 한 가운데 서있고, 이 비극이 다시 되풀이 되어선 안 된다. 진정으로 유권자들이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미래의 번영을 기원한다면, 무분별한 비난이나 무사주의에서 벗어나 이성의 잣대로 후보자들을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눈을 떠야 한다.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지금의 아픔은 위기가 아닌 대한민국의 정치적 성숙을 위한 성장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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