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 어른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도 가끔은 ‘세대 차이’를 말한다. 보통 사소한 행동과 습관 차이를 근거로 연배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자신과 구분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자기가 누렸거나 자신을 지배했던 어떤 행동 규범이나 가치를 중시하고 보존하고픈 심리 상태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점을 시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좀더 넓혀보자. 일반적으로 사회는 변화하게 마련이다. 물질적인 것은 물론이고 제도와 규범, 세계관과 가치관 등도 끊임없이 변한다. 다만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변화의 속도가 완만하면 큰 혼란 없이 그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
그런데 근대에 이를수록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변화 역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래서 변화를 바라보는 관점에 분명한 차이가 생겨나게 되었다. 기존의 가치관과 전통을 고수하려는 입장이 생기는가 하면 그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이정표를 지향하는 개혁적인 입장도 등장하게 된다.
서양사의 측면에서 보면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혁명이 그런 변화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신분 사회의 붕괴와 급격한 정치 체제의 변화, 그리고 혁명의 와중에서 빚어진 혼란은 전통 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보존하고자(conserve) 하는 흐름을 자아냈다.
이런 흐름을 이름지어 보수주의(conservatism)라 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서서 변화를 추구한 입장을 진보주의(progressivism)라 이른다.
보수주의라는 말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탄생했다. 애초에 보수주의는 민주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자유주의에 대해서조차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19∼20세기에 일어난 놀라운 정치·경제·사회적인 변화를 거치면서 보수주의의 내용도 많이 변해왔다. 민주주의나 자유주의적 가치들 중 상당 부분이 보수주의의 내용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이 우리 사회에 유입된 것은 해방 전후이지만, 남북한 대치 상황에서 진보가 발붙일 여지는 거의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로 해석되면서, 진보의 주장은 사회주의에 대한 옹호로 받아들여졌고 좌파 혹은 좌익이라는 색깔이 씌워졌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보수주의나 진보주의가 획일화된 의미만을 지닌 채 이분법적으로 횡행하고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시대가 바뀌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좌·우, 보수·진보 논쟁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서양에서 논쟁의 초점은 시장 경제에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좀 더 복잡하다. 시장 경제뿐만 아니라, 남북 대치라는 특수 상황에서 사회주의 혹은 북한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문제, 민주화 과정에서 빚어지고 있는 각종 개혁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념 논쟁은 공동체의 정체성과 나아갈 길을 논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건설적이고 생산적이지 못할 때 공동체는 혼란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올바른 식견을 가지고 대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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