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한동대 교수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중심부에 위치한 왕궁이 있는 ‘더바광장’ 인근의 시장골목들을 돌아보았다. 왕궁건물들은 매우 아름답고, 정교하고, 규모가 크다. 이를 보기 위해 적지 않은 해외 관광객들이 네팔을 찾고 있다. 하지만 왕궁은 과거의 영광일 뿐 주변거리는 많은 네팔인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는 있지만 구차함이 그대로인 슬럼화 된 좁은 시장골목길 뿐이다.

먼지나고 냄새나는 좁은 시장골목길들은 지어진지 일이백년은 된 듯 낡고 무너질 듯 한, 붉은 벽돌에 정교한 나무창틀을 지닌 3-4층 이상의 높은 건물들과 수 많은 작은 가게들로 이루어져 신비감을 준다. 구차하면서도 보전해야 할 역사물들 같으니, 도시개발이며 도심재생이 쉽지 않은 것이다. 네팔인들은 이러한 거리와 생활을 숙명처럼, 그들 고유의 문화처럼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전기가 나가서 좁은 상점들이 대낮에 암흑이 되어도, 연료대란에 버스운행이 중단되어 한두 시간을 걸어가더라도 그대로 적응해서 사는 듯 보였다. 건축이나 도시계획분야의 대학교수나 대학원생들도 전통에 대한 애착이 도시의 경제발전이나 인프라의 공급, 혹은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대책 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인상을 여러 차례 받았다.

좁은 골목을 걷다보면 인종적 차이를 보이는 듯 다양해 보이는 얼굴들을 대하게 되며, 여기저기 널려있는 크고 작은 사원들, 조그만 석조 제단과 그 앞에 쌓인 지저분해 보이는 꺼진 촛대며 음식물들을 볼 수 있다. 간혹 좁은 골목입구에 두 마리의 석조 짐승들이 지키는 곳들이 있어 일부러 안으로 들어가 보니 넓은 광장이 나타나고 그 안에 거대한 황금색 부처와 오래된 사원건물들이 있었다. 둘레는 5-6층의 낡은 아파트 건물들로 성벽을 이루고 있다. 각층마다 많은 이들이 이 사원을 매일 같이 접하며 모여 살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곳들이 도처에 깔려 있는 것 같은데, 불교사원 만이 아니라 힌두교사원들도 있다. 이들은 네팔에서는 다른 듯 하면서도 같은 듯한데, 그 이유는 힌두교가 불교를 자기들의 한 종파로 인정하는 듯한 자세 때문이라고 말하는 교포 분들도 있었다. 실제로 몇몇 네팔인들에게 종교가 무어냐 물으면 불교이면서도 힌두교라고 대답하곤 했었다.

카트만두 중심 한편에 ‘외국인거리’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그곳은 미국대사관과 미국인만 들어 갈수 있다는 담장 처진 장소 인근의 거리들이다. 카트만두의 다른 곳들 보다 좀 더 정리되고 깨끗한 편이다. 그곳에는 갖가지 청동 및 뿔로 만든 장식품, 목거리, 팔찌, 반지 등 악세사리, 가방, 캐시미어 등을 파는 가게들이 수없이 밀집되어 있고 서양풍의 카페와 음식점들도 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인 이틀간의 ‘도시환경 및 커뮤니티 개발’에 관한 세미나가 끝나고 학생들과 도시 이곳저곳을 탐방하다가 들른 곳이 이 외국인거리이다. 다른 곳에서는 제대로 물건을 살 엄두를 못 내다가 이곳에서 몇 시간씩을 보내며 지갑, 가방, 스카프 등을 쇼핑하고 있다. 필자도 따라다녀 보지만, 우리 학생들이 싼 물건들을 더욱 싸게 흥정하며 쇼핑을 즐기는데, 이곳 상인들도 무척이나 살갑게 대해준다. 대부분 한국말로 인사 정도만 할 뿐 대부분 영어로 대화를 하게 되는데, 어느 정도 영어대화가 되는 학생들이라 쇼핑분위기가 좋은 것 같다. 필자도 야크 뿔로 만든 목걸이 몇 개와 ‘파시미나’ 제품 두어 개를 구입했다. 고산지대 사는 산양털로 만든 직물인 ‘캐시미어' 중 복부부위의 좀 더 부드러운 털로 만들어서 좀 더 고급이라는 파시미나 숄이나 스카프는 매우 아름다운 제품들이었는데, 좀 흥정하여 커피 두어잔 값에 구매할 수 있었다.

한 장식품가게 남자주인은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 것을 큰 뉴스거리로 이야기했다. 그분이 지진이후 이곳 네팔에 들려서 복구작업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며, “우리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동참하는 좋은 분이니 앞으로 우리나라와의 관계가 더욱 좋아지지 않을까요?”라고 묻기도 했다. 사실 이곳 네팔의 대통령을 포함한 총선거일이 며칠 남지 않았기에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좀 더 대서특필되는 것 같기도 하다. 거리에는 자주 정당 및 인물소개 광고판이 걸리기도 하고, 거리에 깃발을 들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큰소리로 데모하는 듯 행진을 해서 무언가 물어보니 선거유세행렬이라고 했다.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져서 필자와 몇몇 일행은 200m 떨어진 대절 ‘마이크로버스’로 급히 돌아갔는데, 타자마자 비가 폭풍우같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나머지 학생들이 어딘가에 비를 피하고 있을 것 같은데, 비는 억수 같고 잠시 사이에 거리는 흙탕물과 구정물로 가득하다. 하수구며 우수구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하니 비만 오면 이 소동이다. 다행히 한 시간 정도 후에 비가 그쳤다. 그제야 학생들이 흠뻑 젖어 돌아와 숙소로 향하는데, 도로의 많은 부분이 침수되어 있다. 사라졌던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이 이를 피해가며 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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