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형 상무이사편집국장

집권여당에서 원내 제1야당으로 전락한 자유한국당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듯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시작된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에 정권을 내준 상황이지만 최근 당내 분위기를 보면 이런 정당이 과연 어떻게 10년 정권을 유지했는지 의문이 든다.
‘박근혜 잔당’의 부활이 시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내 소장파들의 의견은 묵살되고 있고 당의 향후 정체성을 놓고서도 사분오열이다. 제1야당으로서 엄중함은 없고 아이들 패싸움 하는 격이다.

자유한국당 초선 의원들은 16일 의원총회 직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1시간가량 회동한 뒤 공동 성명을 내고 당내 분파를 일으키고 분열시키는 자에 대해서는 단호한 행동으로 대응하겠다며 화합을 주문했다.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 지지기반으로 불리는 영남지역 득표율은 절반으로 추락했고 20~30대는 등을 돌렸다”면서 “존폐의 위기 앞에서 한국당은 철저히 반성하고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날 의원총회에서는 정우택 원내대표의 비상 지도부가 교체돼야 한다는 의견이 옛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정 원내대표가 물러나고 차기 원내대표 체제에서 전당대회를 열어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선 패배 이후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당도 환골탈태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들의 주장은 친박계의 복원을 도모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친박 출신 의원들이 이같은 발언을 쏟아내자 당내 대다수 의원들조차 망연자실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이 24%를 기록, 당 지지율보다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보수재건을 바랐던 국민들은 한국당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홍 후보를 지지했던 것이다. 대선과정에서 이른바 친박들은 숨을 죽인채 바퀴벌레처럼 음지에서 숨어 있었다. 그들이 목소리를 낼수록 보수조차도 외면한다는 사실을 친박 스스로가 인식한 것이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지 1주일여만에 친박은 일체의 반성도 없이 슬그머니 기어 나온 바퀴벌레처럼 다시 마각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이날 의총에는 바른정당을 떠나 최근 복당한 의원 13명 가운데 이군현, 김성태, 박순자, 여상규, 이진복, 홍문표, 이은재, 박성중 의원 등 8명이 참석했지만 이들은 발언하지 않았다.
이들이 탈당했을 당시의 당내 상황이 대선 이후에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였던 홍준표 전 경상남도지사도 이같은 당내 분위기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제 당이 정상화돼야 하는데 구(舊) 보수주의 잔재들이 모여 자기들 세력 연장을 위해 집단지도체제로 회귀하는 당헌 개정을 모의하고 있다고 한다”고며 친박계를 직접 겨냥했다.


그는 “자기들 주문대로 허수아비 당 대표를 하나 앉혀 놓고 계속 친박 계파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이젠 당에 없어진 친박 계파정치를 극히 일부 친박 핵심들이 복원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한국당은 늘 이러한 치열한 문제의식 없이 눈감고 넘어가는 바람에 망한 것이다. 당을 혁신하고 재건하려면 구성원들의 절실함과 치열함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대선에서 나름의 득표율을 기록해 보수의 기치를 살렸던 홍 전 대선후보의 이같은 발언은 혁신하고 변하지 않으면 한국당은 사라져야 할 정당일 수 밖에 없다는 뼈아픈 자성의 목소리란 것을 유념해야 한다. 제1야당답게 환골탈태를 주문한 것이다.

“보수의 존립에 근본적으로 도움이 안 된 사람들은 육모방망이를 들고 뒤통수를 빠개버려야 한다”는 정진석 의원의 말은 한국당이 제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보수 지지층이 한국당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아예 버릴 것이란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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