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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포항정신의 뿌리 서원을 찾아서
   
포항의 서원

◇서원의 역사와 성격
최초의 서원은 1542년(중종 37) 풍기군수 주세붕이 건립한 백운동서원이다. 이후 이황에 의한 서원 보급운동과 더불어 조선중기 이후 향촌사족들의 사회적 활동영역이 넓어지면서 전국적인 서원 건립도 보편화되었다.
조선 초기 거듭된 사화로 인해 지방에 은거한 사림들은 교육공간을 마련하고 성리학을 심화하고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후 학문적 기반이 깊어지고 조직을 재생산하고 교육기능을 강화하고 선배 유학자들을 기리고 제사하는 사당의 기능을 통합한 서원을 건립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초창기 도학적 연원과 내면적 학문연마의 서원 기능은 점차 변화되었는데, 제향하는 선현과 서원 운영 주체들의 성격에 따라 학연, 당파, 그리고 1800년대 이후에는 문중의 이해관계까지 얽히는 복잡한 모습으로 변모해 갔다.
이렇듯 서원은 복잡한 성격변화를 거치면서 400여 년을 이어온 조선시대의 대표적 교육기관이다. 초창기 건립 이후 시대 변천에 따라 그 모습이 변화했지만 서원은 성리학의 발전을 촉진시키고 향촌문화 수준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사설교육기관으로 성현들을 모시는 역할과 향촌질서를 정하고 지역 백성들을 계도하는 역할를 하여 단순한 교육이 아닌 학문연구와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

◇포항의 서원
o 금산서원
1707년 지방사림이 염호공 허진수의 충효와 학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금곡서당을 창립, 1731년 사림의 공의로 승원되어 춘추로 봉행하다가 고종 무진년(1868년) 조령에 의하여 훼철되었다. 그리고 이후 1909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o 안산서원
을사사화 때 간신을 물리치다가 장기로 귀양 온 부사 홍문관 교리를 지낸 낙선 김숙과 통덕랑 주옥 김창을 향사하는 곳이다.

o 봉덕서원
통덕랑을 지낸 밀양 박두극을 향사하는 곳이며, 건립연대는 미상이다.

o 학삼서원
창건 년대는 1797년(정조 21년)이다. 자는 사중이고 호는 죽계, 본은 창녕이며, 참의벼슬을 지낸 이국추의 아들로서 향사 서방경, 서극인, 이눌과 함께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이대임을 향사하는 곳으로 장임랑 훈도 청주병마사를 제수하고 후에 가선대부 병조판서에 증직되었다. 김구 선생의 친필 사액이 보존되어 있다.

o 서산서원
고려시대 예의판서를 지낸 수은 김충한과 서계 김응장을 향사하는 곳이며, 1907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o 덕림서원
포항시 남구 장기면 임중리 485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덕림서원은 고려 충목왕 때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공민왕 때 5도 안렴사를 지내시다 이곳 장기지방에 입향하신 해주오씨 입향조이신 정헌공 오방우의 정현묘를 모시고 있다.
매년 음력 2월 하정일에 향림과 유손이 유업을 추모하며 향배하고 있다. 덕림서원은 조선조 초엽 태종 때 유손과 사림이 공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제궁을 건립하고 그 명칭을 영모재라 하였다. 그리고 영조 36년(1760년)에 와서 유손과 향림이 서로서로 힘을 합하여 중수하였고 순조 5년(1805년)에는 다시 유손과 향림이 힘을 합하여 크게 중수하고 경덕사로 개칭하였으며 고종 31년에 중수와 동시에 덕림서원으로 승격하였다.
5도 안렴사인 정헌공 오방우의 사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장기현 편에 의하면 문과에 급제하여 5도 안렴사를 역임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이 지방 향토사학가 중심으로 발간된 장기읍지와 일월향지의 서원 및 인물편에서도 소상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조 5도 안렴사의 관직에 대하여는 이조의 팔도도 암행어사와 순변도체사를 겸한 관직으로 해석하고 있고 다른 문헌에는 관찰사라고도 한다.
향지에서 기록된 바와 같이 정헌공 오방우의 자는 동도 호는 규헌으로 고려 검교군기감을 지낸 해주오씨 시조인 오인유의 후손으로 충선왕 계축년(1313년)에 탄생하여 충목왕 을유년(1345년)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공민왕 때 5도 안렴사를 지내시다 고려의 멸망으로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키기 위하여 낙향길에 올라 강원도 평해와 경주 사방 등지에 은거하다 장기고을에 입향하였다.
그리고 이 고을을 개척하면서 많은 문도를 두고 지역개발과 교육 등에 많은 공헌을 하시고 향년 81세를 일기로 서거하셨다.
그 자손들은 장기를 중심으로 포항(구 영일군지역)지방에 600년이 넘도록 대대로 살고 있는 유손(약 2,000세대)과 국내 경향 각지 및 해외거주 유손들이 덕림서원을 중심으로 정헌공을 추모하고 있다.

o 삼명서원
1854년(철종 5년)에 창건하였으며 자는 희인, 호 약우, 본은 영천이고 문간공 이감의 7세손이며, 임진왜란 때 경주부를 중심으로 많은 전과를 올린 이눌을 향사하는 곳으로 장임랑훈도를 제수 받았다.

o 중양서원
남은공 서섭의 호는 남애, 본은 달성, 세종조에 등제하여 자헌대부 이조판서를 지냈다.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세종의 어명을 받고 문종조를 거쳐 단종 때 척간소를 올리고자 자청하였다. 영월사변과 육신순절을 듣고 통곡감령시 등을 지었다.
사적이 장릉사보에 기록되어 있다. 묘는 대구 동남항청동산 95 경좌에 있고 담도재 뜰에 신도비가 있는데 비명은 광주 노상직이 지었다.(건립연대 : 1795년)
남은 선생의 문집이 간행되었는데 여강 이능윤이 서문을 벽진 이태일이 유장진성을 이중균이 행장을 승지 김진의가 묘갈명을 지었다. 무주 분양서원 영일중양서원 사림이 제중한다.

o 오천서원
정습명, 정몽주, 정사도, 정철 등을 기리던 곳으로 조선 선조 21년(1588년)에 오천읍 구정리에 건립하여 정습명, 정몽주를 향사해 오다가 임진왜란 때 상실된 것을 광해군 4년(1612년)에 현 위치로 복건하고 그 이듬해 조정으로부터 현액을 하사 받았다.
영조 때에 정사도와 정철을 추향하여 춘추향사 하던 중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어 그 위패를 땅에 묻고 단을 만들어 향사하다가 고종 말엽에 복원되었다. 경내에는 강당을 비롯한 4동의 건물이 있다.

o 나곡서원
중종 기묘사화에 연루된 좌의정 안당의 후손인 함자 안유(호 : 봉제) 선생이 피신을 와서 장기현 오야리에 거주하다 작고하신 후 묘소를 오야리 야산에 모셨으나, 후손이 실묘하여, 1975년 구룡포읍 병포리 정자산에 단소를 선단하였다. 그리고 매년 음력 10월 10일 시제를 모셔 오다가, 1936년 제당을 착공하여 1938년 6월 하순경에 완공하여 시제를 모셨다. 그 후 1977년 나곡서원으로 성균관 인가를 득하여 매년 음력 4월 초경에 향사를 모시고 있다.

o 광남서원
단종을 보좌하다 1453년 계유정란 때 수양대군에게 살해된 충정공 지봉 황보 인을 봉안하고 그 장자인 참판공 황보 석과 그 차자인 직장공 황보 흠을 배양하기 위해 지방 유림과 그 후손들이 세웠다.
정조 15년(1791년)에 후손이 창건하여 세덕사라 하다가 순조 31년에 광남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o 입암서원
입암서원은 조선 효종 8년(1657년)에 현재 죽장면 입암리 토월봉 아래에 창건된 것으로 임진왜란 시 이 지방에 피난 와서 살다가 죽은 문강공 장현광을 봉안하고 지방유림인 동봉 권극립, 우헌 정사상, 윤암 손우남, 수암 정사진을 배향하고 있다.
고종 5년(1868년)에 훼철되고 순종 원년(1907년)에 묘우가 소실되었다가 1913년에 서원이 복원되었으며 1972년에 묘우를 복원하였다.
입암서원은 목조와가의 ㄱ자형으로 그 일대가 자연경관이 수려하며, 주변에 만활당, 일제당이 있다.

허경태 기자  gjshstn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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