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특·한학자

태백산맥이 남으로 길게 뻗어 내린 깊은 골짝, 소백산 너머 三道(강원. 충청. 경상)의 경계지점, 골짝물이 흐르다가 외로워 굽이쳐 흐르는 곳, 강원도 영월 땅 육지속의 작은 섬 청령포에 단종(1441~1457)의 넋이 깃들어 있다. 꽃을 피우려다 험한 바람에 꺾여버린 열일곱의 나이에 지은 자규시(子規詩)를 소개한다.

- 端宗의 子規詩 -
一自寃禽出帝宮 孤身喪影碧山中
假眠夜夜眠無假 窮恨年年恨不窮
聲斷曉岑殘月白 血流春谷落花紅
天聾尙未聞哀訴 何奈愁人耳獨聰

한 마리 원통한 새 궁궐을 나와
외로운 몸 그림자 잃고 푸른 산을 헤맨다.

선잠 그나마 밤마다 이룰 수 없고
궁한 설움 해마다 끝이 없어라.

새소리 끊어진 새벽 산엔 그믐달 비추고
피가 흐르는 봄 골짝엔 落花가 붉고나.

하늘은 귀가 먹어 슬픈 하소연 듣지 못하는데
시름에 젖은 이 사람은 어찌하여 홀로 귀가 밝은가.

*자규는 밤에만 우는 새로, 子規. 소쩍새(小鼎). 杜鵑. 不如歸. 歸蜀으로도 불린다.

- 蘭皐 김삿갓의 艱飮野店 -
千里行裝付一柯 餘錢七葉尙云多
囊中戒爾深深在 野店斜陽見酒何

천리 길 나그네 가진 것은 지팡이 하나뿐
남은 돈 일곱 닢 오히려 많다네.
너에게 다짐하길 주머니 속에 깊이깊이 있어라 했건만
석양에 주막집 술을 보고는 어쩌리오.

- 蘭皐김삿갓(金炳淵1807~1863)의 生涯

김삿갓은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을 당시 선천부사였던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투항한 죄로 처형당하고, 아버지는 남해로 귀양갔다. 김병연은 멸족의 화를 피해 황해도 곡산에 숨어살다가, 세월이 흘러 멸족의 신분에서 폐족으로 감형되어, 심심산골 강원도 영월 어둔에 정착하였다.

김삿갓이 어른이 되어 영월동헌에서 실시한 백일장에 참가하여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이라는 詩題로 지은 글이 壯元하였다. 그 내용은 가산군수 鄭蓍가 충절을 지키다가 죽은 것을 예찬하고 선천방어사 김익순이 투항한 죄를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로부터 집안의 내력과 조부를 욕한 자괴감을 이기지 못하고 不忠·不孝한 자신은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하여 그때부터 삿갓을 쓰고 팔도강산을 떠돌아다녔다. 문장에 능하여 많은 시문을 남겼으나 기록에 전하는 것은 얼마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풍자와 해학, 멋스러움이 글 속에 남아 전하고 있다.

그의 주거유적지와 묘소가 영월 땅에 있어 생애와 詩세계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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