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경제 위기 이후 고용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띈 변화는 노동의 유연성 강화였다. IMF 위기를 초래한 원인인 고비용비효율 구조의 한 축이 평생직장 고용 패러다임이었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의 유연성은 노동자를 임시직(기간제)으로 고용하고 인력 공급 회사로부터 노동자를 공급받는 형태(파견제)로 구체화되었다. 이런 고용 형태를 기존의 고용 형태(정규직)와 대비해서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그런데 비정규직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정규직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열악한 조건에 놓이게 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과반수에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노동자 두 명 중 한 명은 낮은 임금과 고용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노동에 기초하여 삶을 꾸려야 하는 대다수 국민은 불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언제 비정규직으로 전락할지 불안하고 비정규직은 그들대로 언제 해고될지 불안한 것이다. 경제 침체와 사회의 양극화의 확대 추세와 맞물려 비정규직 문제, 다시 말해서 노동의 유연성 강화는 우리 사회의 건강한 발전과 조화를 가로막는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최근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고자 노동자, 사용자, 정부가 합의하여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 노동의 유연성이 불가피하다면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점을 최소화하여 노동자가 안정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기간제와 파견제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쉽게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국가인권위에서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서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비정규직 보호라는 취지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 요지는 기간제 고용이 남용되지 않도록 사용 사유를 제한하고, 파견 허용 업무는 일정한 업종에 제한해야 하며,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임금을 지불하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사용자 단체는 물론이고 정부 당국자조차 인권위의 권고를 국민 경제 전체나 국가 경영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며, 비정규직 문제는 정책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것이지 인권 차원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인권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다. 그 내용은 사회적 발달 단계에 따라 그 내용이 구체화된다.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반화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경우, 그것은 경제 정책 차원의 선택 문제일 수도 있지만 아직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거나 애써 외면한 인권 차원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지금의 진통은 인권의 내용을 찾아내고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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