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용 경북도문화융성위원회 위원

지방자치단체장이 시민을 두려워해야 하는 논리는 시민이 그 지역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의 통치권 아래에서, 국가 영토의 일부에 대한 자치권을 부여 받아 그 구역 내의 시민을 법률의 범위 안에서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단체를 말하기 때문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선생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권12 ‘함경도 부령도호부사로 부임하는 이종영(李鍾英)을 전송하는 서문’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자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네 가지 있으니, 아래로는 백성을 두려워해야 하고, 위로는 대간(臺諫)을 두려워해야 하며, 그 위로는 조정을 두려워해야 하고, 더 위로는 하늘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글은 다산 선생이 친구 이재의(李載毅)의 아들 이종영이 함경도 부령도호부사(富寧都護府使)로 부임할 때 써준 글이다. 수령들이 일반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관원들의 비리를 찾아내 탄핵하는 대간이나 관원을 임명하고, 파직하는 권한을 가진 조정의 신하들이다. 그러나 자신이 맡은 고을이 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대부분의 수령은 대간이나 조정마저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토색질을 일삼는 것이 일반적인 행태였다.

이종영이 부임하는 부령도호부는 함경도 마천령(摩天嶺) 북쪽에 있는 고을로, 한양에서 2천리나 떨어져 있으니, 다산 선생으로서는 이런 험지의 수령으로 가게 된 친구 아들을 보며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산 선생은 대간과 조정 뿐만 아니라 백성과 하늘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는 경계의 말을 해주었다. 대간과 조정은 때로 멀리 있어 모든 것을 다 보고 들을 수 없지만, 백성과 하늘은 늘 눈앞에서 혹은 바로 위에서 보고 들으므로 참으로 두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백성은 수령이 세금 거두는 것을 고르게 하지 않아도 원망하고, 창고를 열어 진휼(賑恤)하고 곡식을 받아들일 때 이익을 취해도 원망하고, 술과 여색에 빠져 있어도 원망하고, 형벌을 함부로 쓰거나 송사(訟事)를 잘못 처리해도 원망한다. 이렇게 백성들이 원망하는 것을 수령이 두려워하지 않으면 결국 하늘도 분노하여 재앙을 내린다는 것이다.

다산 선생의 당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부령도호부는 조선의 동북방의 국경지역으로 영토문제가 계속 이어져 내려온 곳이니, 수령으로서 이곳의 역사를 모르면 안 된다면서, 고대국가 옥저(沃沮)때 부터 고려와 조선 초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제대로 알아야 하고, 부임해서는 직접 지도(地圖)와 지지(地誌)의 내용이 실제와 맞는지도 확인해서 엉성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잡는 것이 수령의 책무라고 강조하였다. 참으로 나라를 위하는 다산 선생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지금은 조선시대와 달리 지방자치가 제도화되어 시민이 직접 도지사와 시장·군수를 뽑는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대부분 민심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민심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부정부패 사건에 연루되어 처벌받는 일이 종종 발생하곤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다산 선생의 말씀에 의하면, 대부분의 수령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에만 신경을 쓸 뿐 백성과 하늘을 두려워하는 일에는 마음을 쓰지 않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현 정부는 지방분권을 강화한다고 하니,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더욱 더 시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지방자치란 다의적(多義的)인 개념이다. 즉, 국가에 따라 지방자치가 생성·발전되어 온 역사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그 정의도 각각 다르다. 그러나 지방자치는 전통적으로 주민자치와 단체자치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자치단체와 주민과의 관계에 중점을 두는 자치제도로써, 지방주민들이 일상생활에 관련되는 사무를 중앙정부에 의하지 않고 자기들의 의사와 책임아래 스스로 처리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후자는 자치단체와 국가의 관계에 중점을 두는 자치제도로써, 법률상으로 법인격을 가진 자치단체가 국가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된 지위를 가지고 일정한 권한을 부여받아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처리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전자를 정치적 의미의 자치, 후자를 법률적 의미의 자치라고 정의한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언가? 시민과 하늘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그렇게 해야만 시민들이 행복하며 희망을 가지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