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용 문화기획팀장·미국 서부편

▲ 지난 14일(현지시간) 브라이스 캐니언에서 찍은 전경. 햇빛에 반사돼 반짝이는 후두스가 돋보인다.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이 바로크라면,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은 로코코다.
브라이스 캐니언의 곡선은 우아하면서도 권위가 있다. 그야말로 사막의 여왕이다. 봉긋 솟아오른 풍성한 우유 거품 아래 숨겨진 진한 에스프레소의 맛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260마일(418km)을 달려 도착한 브라이스 캐니언.
장거리지만 창밖의 풍경을 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새벽녘에 떠오른 태양이 잠들어 있는 광활한 대지에 숨결을 불어넣을 때 모든 생명들은 기지개를 켜며 눈을 뜬다. 사막이 삭막하지만은 않은 이유는 푸르른 심장이 뛰고 있기 때문이다. 강한 생명력이 대지 위에서 포효한다. 살이 타들어갈 듯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이 녹색의 생명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끝없이 펼쳐진 도로 위로 솟아난 뭉게구름들이 새파란 하늘과 더욱 멋지게 어울린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뽀드득 소리가 날 듯 하다. 일행이 “미제 구름이라 역시 다르다”고 농을 던졌다. 고도가 높은 지역이라 하늘이 땅과 거의 맞닿아 있다. 손을 뻗으면 구름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감이다. 들판에는 야생 동물이 뛰어다닌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저 생명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감격에 젖어있을 때쯤이면 어느덧 4시간이 훌쩍 지난다. 마침내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에 도착한 것이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전했다 한들, 카메라의 렌즈는 육안을 따라오지 못한다. 소위 “사진 빨을 받지 못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무생물의 사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대지가 살아서 숨 쉰다. 바람, 물, 태양이 꿈틀대며 단단한 바위기둥을 조각하고 있다. 아름답고 기품이 흘러넘친다.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단 하나의 복제품도 없다. 약 1천500만년전부터 지금까지 자연은 바야흐로 천혜의 예술품을 빚고 있다. 웅장하면서도 다가가기 쉽다. 흔쾌히 길을 내어준 브라이스 캐니언의 포용력이 대지의 어머니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다람쥐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런 곳에도 귀여운 다람쥐가 살고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다람쥐들은 관광객들에게 살갑게 다가와 귀여움을 한껏 내뿜는다. 여기서 주의할 점! 야생동물에서 먹이를 주면 1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다람쥐의 애교에 넘어가면 벌금도 벌금이지만 그들에게 해가 될 수 있으니 꾹 참길 바란다. 트레킹 길을 걸으며 자연과 함께 되는 것을 즐겼다면, 이 예술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비지터 센터(Visitor Center)에서는 후두스(hoodoos·호리호리한 바위기둥)의 형성 과정, 역사, 주위 환경, 화석 등을 볼 수 있다.

브라이스 캐년 중 'Bryce Amphitheaters' 분지의 형성 과정이 잘 설명돼 있다. 'amphitheaters'는 고대 로마의 원형 극장이라는 뜻으로, 브라이스 캐니언의 심장부에 해당된다. 분지는 단층이 수백만 년 동안 여러 번의 단층 작용으로 고원이 융기되고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침식작용이 일어나 가파른 협곡을 형성한다.
Plateau고원의 가장 표층인 Pink Cliffs의 가장자리에서 지느러미 모양의 암벽이 만들어진다. 서로 교차하는 부위 중 저항이 약한 부분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하고 수직으로 균열된다. 이 부위에 지속적인 침식이 일어난다. 얼음의 팽창 압력으로 인한 쐐기 작용으로 각각의 탑처럼 생긴 후두스로 분리된다.

브라이스 캐니언은 1875년에 이주해 온 Ebenezer Bryce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조선업자로 서부에 도로를 건설했다. 사람들은 도로가 끝나는 곳의 Amphitheater를 ‘Bryce Canyon'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정착민들은 물길을 만들기 위해 주 6일 삽으로 파서 3년간 일을 하며 15마일(24km)의 수로를 만들었다.

광야를 바라보며 대자연의 힘을 느끼고 그 속에 존재하는 인간으로서의 고뇌. 도시의 생존과는 또 다른 생존 본능을 일깨우는 곳. 오늘 그대의 삶이 힘들고 지쳐 영혼의 빛을 잃어간다면 브라이스 캐니언의 힘찬 고동의 소리를 듣고 다시 일어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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