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폭염주의보 발효로 찌는 듯한 무더위가 드디어 끝을 보이고 선선해진 가을날씨가 식욕을 돋우기 시작한다.

이열치열이라고도 하지만 한 여름에는 도저히 먹기 힘들었던 뜨끈뜨끈한 돼지국밥이 생각나는 것을 보니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돼지국밥은 돼지 뼈로 우려낸 육수에 돼지고기 편육과 밥을 넣어 먹는 국밥류의 요리로, 부산광역시의 대표적 향토 음식이었다.

포항시 남구 이동에 위치한 동래국밥(대표 배동섭)은 처음에는 부산에서 먹던 토렴(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해 덥게 함) 방식으로 했었으나 지금은 포항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돼지사골을 삶아 진한 육수로 내놓는다.

식당 마당 한 켠에 떡하니 자리잡은 가마솥에 돼지 사골인 무릎 뼈만 사용해 3시간을 삶고 뜸을 들인 후 다시 3시간을 삶아 깊고 진한 육수 맛을 낸다.

뽀얗게 우러나온 국물을 아무런 간도 하지 않고 한 입 떠 먹어보니 잡맛이 없고, 구수한 맛이 입안을 가득 맴돈다.

돼지국밥 애호가인 부산의 최영철 시인이 “돼지국밥을 먹으면 숨어 있던 야성이 깨어난다”고 말한 것이 공감이 될 정도로 깊고 진한 맛이다.

간을 하지 않아도 비릿함이 없어 계속 먹게 되는 중독의 맛이지만 양념을 넣어 먹으면 또 어떻게 맛이 달라질까 궁금하기만 하다.

주문하면 바로 무쳐 나오는 싱싱한 부추무침을 넣고 짭쪼름한 새우젓과 양념장으로 간을 한 국물을 떠 먹어보니 야성의 맛보다는 이제 조금 친숙한 맛이 나타난다.

간을 하고 나서일까? 돼지 비린내를 찾아 보려 해도 냄새가 나지 않아 혹시 비린 맛으로 돼지국밥을 못 먹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맛이다.

돼지국밥을 크게 한 스푼 뜬 후, 매일 아침에 무치는 배추김치를 한 점 올려놓으니 침이 꼴깍 넘어간다.

봉긋하게 솟은 국밥을 입에 넣자 머릿고기의 쫄깃함과 국내산 쌀로 지어 탱글탱글 살아 있는 밥알, 그리고 아삭아삭한 김치의 맛 삼박자가 잘 어우러지니 한 여름 더위에 고생했던 기억이 싹 잊혀진다.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할 것이다. 그 입안의 황홀했던 기억을.

김치와 깍두기를 직접 만드는 것 보다 업소용 김치를 사서 쓰는 게 편하지 않냐고 물어보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기본 반찬인 김치류를 사서 쓰면 그게 무슨 음식이냐”며 “내가 먹는 음식, 가족이 먹는 마음으로 음식을 해야 한다”는 주인장의 음식에 대한 고집이 감동으로 밀려온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문턱, 제대로 몸보신을 해야겠다는 사람들은 7천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동래국밥을 먹어보길 추천한다.

‘식객’의 허영만 화백의 말을 빌려 쓰자면 “소 사골로 끓인 설렁탕이 잘 닦여진 길을 가는 모범생 같다면, 동래전통국밥의 국밥 한 그릇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반항아 같은 맛”으로 끊임없이 생각나게 하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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