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비판했던 문화예술인 ‘직격탄’

검찰이 12일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이른바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퇴출활동을 펼쳤다는 의혹과 관련, 수사팀을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지난 11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취임 이후 수시로 여론을 주도하는 문화예술계 내 특정인물·단체의 퇴출 및 반대 등 압박활동을 지시한 것을 확인했다며 수사의뢰를 권고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국정원의 수사의뢰는 아직 접수되지 않았다”며 “추가 수사의뢰 부분은 기존의 수사팀이 담당할 가능성이 크다. 수사의뢰를 받아보고 필요하면 수사팀을 확대하는 등의 검토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라 작성된 블랙리스트에는 총 82명의 이름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이외수·조정래 등 문화계 인사 6명과 문성근·명계남을 비롯한 배우 8명이 포함됐다. 이창동·박찬욱·봉준호 등 영화감독은 52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명박 정권 하의 국정원은 ▲ 대통령에 대한 언어테러로 명예를 실추 ▲ 좌성향 영상물 제작으로 불신감 주입 ▲ 촛불시위 참여를 통해 젊은층 선동 등을 사유로 이들에 대한 압박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연예인 블랙리스트’가 결국 사실로 드러나면서 방송연예, 영화, 문화계 안팎에선 분노를 넘어 한탄을 자아냈다.

배우 김규리는 1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블랙리스트 명단을 캡처해 올리면서 “이 몇 자에, 나의 꽃다운 30대가 훌쩍 가버리네. 10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이라며 소회를 밝혔다.

이명박 정부 시절 ‘연예인 블랙리스트’를 처음 공개적으로 거론해 파문을 일으켰던 방송인 김미화는 언론과의 통화에서 “10여 년을 제가 서고 싶은 무대에 서지 못했다”고 말했다.

2009년 ‘좌파 연예인 대응 TF’를 통해 국가정보원이 관리했던 문화예술인 명단에 오른 인사는 문화계 6명, 배우 8명, 영화계 52명, 방송인 8명, 가수 8명 등 총 82명이다.

김미화는 2010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김미화는 KBS 내부에 출연금지문건이 존재하고 돌고 있기 때문에 출연이 안 된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KBS는 당시 이 발언을 문제 삼아 김미화를 경찰에 고소했으며, 방송인 김제동도 김미화에 앞서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차 통보를 받아 그의 출연을 놓고 외압이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또 김규리는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째로 수입하다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안에 털어 넣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고 비판한 뒤 쇠고기 수입업체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영화계 인사들은 정치적 색채가 훨씬 뚜렷했다.

고(故)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문성근 씨는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일찌감치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명계남과 함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를 조직했으며, 여균동 감독 역시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지원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국민의 명령’이라는 시민운동을 문성근과 함께 했다.

또 이창동 감독은 참여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고,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은 정의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했었다. 배우 문소리 역시 민노당 당원이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영화계 인사 중 나머지는 대부분 2006년 5월 지방선거 앞두고 민노당 지지선언을 한 감독들이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계 인사들도 대부분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나 언론 인터뷰 등에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인사들로 알려졌다.

현재 팔로워가 240만명인 ‘파워 트위터리안’인 작가 이외수 씨는 트위터에 “외계인은 지구에 있는 모든 쥐를 데려가 줘”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을 대놓고 풍자와 동시에 2008년 그가 진행하던 MBC라디오 프로그램 ‘이외수의 언중유쾌’가 1년 만에 폐지돼 외압설이 제기됐었다.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씨는 2010년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모든 정권은 임기가 끝나면 역사의 심판을 받게 돼 있는데 이 정부가 가장 심판받을 수 있는 부분이 4대강”이라며 이명박 정부 정책을 비판했고, 이어 당시 TV 드라마로 제작키로 제작사와 계약까지 된 조 작가의 소설 ‘아리랑’은 제작이 무산됐다.

진중권 교수도 이명박 정부 시절 정부에 대한 독설로 여러 번 화제가 됐다. 그는 2009년 홍익대에서 진행하던 강의가 이유 없이 폐강되고 강연이 돌연 취소되는 일을 겪었으며,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은 성공회대 겸임교수 시절 여러 차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으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던 인기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기획자로 활동했고, 연극인인 김명곤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2010년 문화예술인 1천800여 명이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했던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가수들 중에는 광우병 파동 당시 촛불문화제에 참여했거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에 목소리를 낸 이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특히 그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양희은과 안치환, 윤도현, 김장훈은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광화문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여해 공연했으며, 가수 이승환은 자신의 SNS에 관련 기사를 링크하면서 “나 좀 넣어라, 이놈들아!”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이번에 밝혀진 이명박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연예인들은 평소 정치, 사회 문제에 관해 대개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던 인물들로 이들은 이명박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로 분류돼 방송출연이 막히는 등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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