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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역사 한 조각] 흑치상지, 모략으로 목숨 잃어
우리 역사에도 투서와 모략으로 목숨을 잃은 영웅들이 부지기수다.
백제 패망 이후 국가 재건을 꿈꾸며 부흥군을 이끌었던 흑치상지가 대표 인물이다.
흑치상지는 660년 나당연합군에 항복한 의자왕이 당나라 소정방에게 술 시중을 드는 현장을 목격하고서 부흥운동을 주도한다.
임존성(충남 예산 봉수산성으로 추정)을 근거지로 삼아 3만 군사를 이끌고 반격에 나서 200여 성을 되찾는 전공을 세운다.
위기에 처한 소정방은 의자왕을 비롯한 왕족과 귀족·장병 1만3천여 명을 데리고 황급히 당나라로 귀국한다.
부흥군은 일본에 볼모로 갔다가 백제 패망 후에 왜군을 이끌고 귀국한 옛 왕자 부여풍을 임금으로 추대하고서 백제 재건에 나선다.
하지만 663년 백제 무왕의 조카 복신과 승려 도침이 권력쟁탈전을 벌인 끝에 자멸하고 만다.
3년 동안 무섭게 타올랐던 부흥운동의 불길이 사그라지는 시기에 맞은 백강구 전투에서 완패한 것이다.

왜군이 함정 1천여 척, 병력 2만7천여 명을 파견해 부흥군을 지원했으나 지휘부 분열 탓에 나당연합군에 적수가 되지 못했다.
부흥군에 실망한 흑치상지는 중국에서 후일을 도모하자는 의자왕 장남 부여웅의 제안을 받아들여 당나라군에 들어간다.
이후 당나라 변방 서쪽과 북쪽을 각각 공격한 토번(티베트), 돌궐(투르크)과 싸워 대승을 거둔 것을 비롯해 약 30년 동안 각종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는 대기록을 세운다.
고구려 출신으로 파미르 고원을 넘어 서쪽 이민족을 정벌한 고선지와 더불어 흑치상지는 당나라 7대 장수로 꼽힌다.
하지만 중국 역사상 유일 여성 황제인 측천무후를 제거하려는 모반 사건에 연루됐다는 모함을 받아 처형된다. 감옥에서 옷을 찢어 만든 줄로 목을 매 자결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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