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태 전 포항정책연구소장

‘성장을 거부할 권리는 없나요. 이 처참한 현실 사회에 굳이 밀어 넣으려는 이유가 뭔가요.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자라고 싶지 않아요. 꿈이란 말로 고문하지 마세요. 필요하다면 나의 좌절된 꿈까지도 가져 가세요. 어른들이 만든 법칙 그 우악스런 포승으로 우리를 동여매지 말아 주세요. 자연스런 모습으로 자라게 해 주세요. 우리는 분재가 아니란 말이에요’ 라고 아이들이 울부짖으면 어른들은 과연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네 이 노오옴. 무슨 얼토당토 않은 소리를 늘어 놓는 게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할 일이지. 어디서 따박 따박 대꾸야 대꾸가. 애들이 뭘 안다고. 어서 공부나 해! 혼나기 전에’ 라고 곰방대를 재떨이에 두드리며 호통치면 끝날 것인가.

이 땅의 교육 현실이 안타깝고 애닯다. 청소년들이 어떤 모습으로 자라나느냐는 그 나라의 미래다. 청소년이 그 나라의 미래? 교육 관계자들의 영혼이 누락된 표현에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어른들이 웃기 전에 아이들이 먼저 웃을 지도 모르겠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왠지 미안한 생각마저 든다.

생각해 보면 또 청소년 입장에서 뭘 그리 투덜거리는 지 모르겠다. 못 먹고 누더기 걸치고 맨 발에 고무신 신고 다닐 때도 성공할 사람들은 성공하였고 놀던 이들은 그 때도 놀았고 지금도 논다. 소크라테스나 갈릴레오가 공부할 때 옆에서 놀던 아이들은 분명히 있었다. 다만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기억해 주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삶을 가치 없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도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떤 이를 열렬히 사랑하였을 것이며 삶의 의미를 추구하다 늙고 병들어 죽어 갔을 불쌍한 인생들이다.

인생은 결코 어느 누구의 것이 아니다. 삶은 자신이 개척한 결과로 남아있는 날들을 맞게 된다. 그게 다다. 그저 그런 것이다. 과도하게 보호 받아야 할 인생이 없는 것처럼 속히 삭제돼야 할 생명도 없는 것이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숙명이나 운명이라는 피동적 뉘앙스와는 사뭇 다른 개념이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꾸역꾸역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왜 나는 공부만 해야 되느냐고 억울해 할 것도, 왜 내겐 공부할 기회를 주지 않느냐고 비통해 할 것도 아니다. 인생에서 우열과 승패를 논하는 어른들의 굴레를 아이들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다. 윤동주는 윤동주 대로, 백석은 백석 대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

예전에는 일곱이나 열 남매를 거느린 가정도 흔했다. 걱정하는 눈빛의 이웃에게 하던 말이 떠오른다. 아이들이 제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나지요. 밥 숟가락은 들고 태어나지요.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부모로서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무성의한 태도가 어디 있겠나. 그래도 그 시절을 용케 살아낸 세대들이 아이들에게 금 숟가락, 은 젓가락을 들려 주고 집을 물려 주고 하는 것 아닌가. 어차피 자신들에겐 익숙한 가난을 무서워하지 않고 아들 딸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남겨 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현실이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른들이 어떻게 늙어 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어차피 패배하도록 되어 있는 승부에 분통을 터뜨리고, 벌써 끝난 게임을 아직도 붙들고 있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며 바득바득 우기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아이들은 어떤 어른으로 자랄 것인가. 게 걸음 치는 엄마 아빠 게가 어린 게에게 너는 똑 바로 걸으라는 것과 뭐가 다른가. 찔리는 이야기다.

포항에 ‘청소년 진로상담센터’가 들어선다고 한다. 진로 상담이란 단순히 어느 대학에 들어가서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지를 안내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결국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안내까지도 포함되는 일이다. 그러자면 다양한 정보와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다. 편협한 잣대로 호의호식을 권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 이기면 다 가지고 지면 다 빼앗기게 된다는 흑백논리가 끼어들 여지는 원천적으로 배제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기량을 확인하고 꿈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는 수시로 변하는 교육 제도에 긴밀하게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 각 학교마다 진학 상담 교사가 있긴 하지만 다양화되어 가는 학생들의 요구에 효과적으로 부응하기엔 힘이 부친다. 뭐가 되겠다고 찾아 오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일은 어쩌면 쉽다. 문제는 ‘선생님 뭐가 되면 좋을까요?’라고 물어 오는 녀석들을 제대로 이끌어 주는 일은 어렵지만 신나는 일이다.

포항 지방 교육청 자료를 보면 대략 6만 7천여 명의 학생들이 진로 상담 대상이 된다. 그 중에 절반이 수혜를 볼 경우에 약 900억 원의 경제적 효과가 예상된다.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줄 뿐 아니라 지역 경제의 외부 유출을 방지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물론 이 경우에 진로상담 교사 몇 명이 얼마나 과로를 하게 될 지는 별개 문제이긴 하다. 직접 상담을 받지 않더라도 진로상담센터 자료 활용이나 정보 제공 등으로 해결될 수도 있다.

최근 청소년 흉악 범죄 이야기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자신의 진로가 분명한 아이들이 이런 짓을 저지르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포항 시의 교육 행정에 거는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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