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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역사 한 조각] 전쟁 영웅들이 되레 처형되는 일
임진왜란 당시에는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줄행랑치는 상황에서 전쟁 영웅들이 되레 처형되는 안타까운 일이 잇따랐다.

신각 장군은 1592년 경기도 양주 해유령에서 선조를 사로잡기 위해 추격하던 왜군 선봉대 70여 명을 죽인다. 왜군이 부산에 상륙한 이후 조선 육군이 거둔 첫 승리다.

조선 최강 신립 부대가 몰살된 후 거둔 쾌거라 선조가 몹시 기뻐할 것으로 생각한 신각은 승전보를 올렸으나 돌아온 것은 죽음이었다.

신각이 명령에 불복해서 달아난 탓에 한강 방어에 실패했다는 도원수 김명원의 허위 보고를 선조가 믿은 탓이다.

선조는 뒤늦게 승전보를 받고서 처형 명령을 철회했으나 이미 목이 잘린 후였다.

호남 의병장 김덕령(1567년~1596년)도 억울한 죽임을 당한다.

전남 담양 등지에서 의병을 이끌고 왜군과 싸워 대승을 거둔 김덕령은 경상도 의병장 곽재우와 합동작전도 펼쳐 전공을 세운다.

하지만 김덕령은 강군이 되려면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신념에서 엄격한 군율을 적용하다가 부하들의 원성을 사 투옥된다.

설상가상으로 1596년에는 충청도 이몽학 난에 연루됐다는 모함까지 받아 목숨을 잃는다.

과거에 합격한 엘리트 장교인데도 의병장 지휘를 받는데 자존심이 몹시 상한 신경행이 무고한 탓에 선조 앞에 불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기 때문이다.

정강이뼈가 처참하게 부러질 정도로 몇 날 며칠 장을 치는데도 결백을 주장하던 김덕령은 장독을 견디지 못해 끝내 죽고 만다.

정부 부처나 사정기관에도 갖가지 투서가 난무할 것으로 추정된다.

삼인성호 방식으로 훌륭한 공직자를 부역자로 몰아세울 수도 있다. 삼인성호는 세 사람이 우기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는 고사성어다.

적폐 척결은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식으로 하되 범죄자 열 명을 놓치더라도 억울한 한 명을 만들지 말라는 형사소송법 정신도 고려해야 한다.

'중국 민주화 운동의 외로운 섬'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류샤오보의 발언도 새겨들을 만하다.

"증오는 지혜와 양심이 아니다. 적대감은 국가 영혼을 오염시키고, 야만적 삶을 악화시키고, 관용과 인간성을 파괴하며, 국가가 자유와 민주로 발전하는 것을 방해한다"

대경일보   webmaster@d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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