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홍 시인·자유여행가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도착하기 전부터 커다란 호텔이 마을에 서있는 모습을 보았다. 여느 시골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놀라며 이른 아침 사북에 도착했다. 도시라고 해야 하나, 간판과 간판이 줄을 지어 길을 내고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시내를 돌아봤다. 길에는 음식점과 호텔, 사우나와 맛사지를 받는 가게 같은 유흥업소가 대부분이었고 가장 눈에 많이 띠는 간판은 전당사였다. 길마다 그렇게 많은 자동차가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생경한 소읍 시내 골목은 아침부터 소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식당마다 간간히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식탁 위에는 어김없이 소주병이 올라와 있었다. 밤새 카지노에서 놀다가 빈속을 달래려고 식당을 찾은 사람들일까. 길은 각종 전단지와 밤새 먹다가 버린 음료수병 등 쓰레기 천지다. 여기저기 버려진 쓰레기, 길에서 떠들고 있는 젊은이들, 편의점 앞에서 과자봉지에 맥주 깡통을 비우는 사람을 보니 사북은 정상적인 도시로 보이지 않았다. 겉보기는 꽤나 치장도 하고 여느 소읍에는 있을 수 없는 도시적인 모습의 풍경이지만 그곳에서 머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지 사북에서의 아침은 왠지 불안했다.

70년대 이후 탄광산업의 몰락으로 열악해진 환경에서 일하던 광부들의 노사분규가 80년대 노동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도시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강원랜드, 하이원리조트가 서있다. 석탄산업 사양화에 따른 폐광지역 경제회생을 위한 폐광지역개발지원특별법에 의해 1998년 6월에 생긴 카지노,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가 세워졌으나 사람들이 그 안에서만 있어 지역민들의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 골프장과 스키장이 들어섰다. 사북역은 애초에 여객업을 하던 역이 아니고 석탄을 나르기 위한 화물역사였다. 사북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자 1966년에 보통역으로 여객업을 시작했다. 한 밑천 잡아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한 때 번성했던 사북은 카지노 산업으로 다시 전성기를 누리게 됐다. 정말 사북은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는 것일까. 눈으로 보이는 사북의 모습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보상받은 돈을 털어 도박으로 일확천금 꿈꾸다 목숨을 버리는 일이 잦은 그곳의 주변 사람들은 정말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

"사흘 날밤이다/ 팔 할을 내주고 이 할을 얻었다//현금이 바닥이다/ 카드를 긁는다// 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야트막한 언덕빼기에도 숨이 가빠 오고/ 아랫도리는 고개 떨군 지 벌써 닷새 째// 그 길로 아내가 야반도주하고,/ 카지노 입구 전당포에 잡힌 승용차도/ 반나절 만에 바닥을 드러낸다/ 이제 무엇이 남았는가// 찾아왔던 길 끊기고/ 이 할의 희망마저 바닥이 나고/ 저기, 쥐구멍 하나 보인다// 폐광이다." (박영희 시 ‘또 다른 막장’ 전문)

강원랜드가 생기고 주변 관광지는 활성화 되었다. 주변의 정선 5일장도 장날 외에도 휴일에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시장이 깨끗하게 잘 꾸며져 있다. 돈이 도니 마을이 환하다. 카지노 산업으로 죽어가던 도시가 살아나니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겠으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정작 어떤 상태일지 궁금하다. 광부들이 번 돈은 햇빛을 보면 녹아버린다고 했다. 어두운 막장 안에서 힘겨운 노동으로 번 돈을 술로 탕진하기도 했을 그들은 지금 무슨 희망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을지. 그곳에서 수 십 년 광부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진폐증 환자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겠지만 카지노의 그늘 속에 가려버렸다. 제 살을 찔러가며 싸웠던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지금을 살고 있는지. 광부들이 수직갱을 내려가기 위한 높은 타워가 세워진 탄광 체험관 옆을 지나갔다. 휴가를 보내러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리조트 높은 건물 속에서 사북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건물 안에서 보내는 휴가는 진정한 휴식이 되는지. 하늘은 푸르고 흰 구름이 공기 속으로 퍼진다. 사람들이 사는 사북이, 그곳의 카지노가 더 이상 폐광이 아니고, 막장도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만 하늘로 날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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