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축구계는 거스 히딩크(71) 감독 얘기로 시끌벅적하다. 급기야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여론조사까지 했다. 소란은 히딩크 감독이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로 촉발됐다. 히딩크재단 사무총장이란 사람이 지난 6월19일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에게 “러시아월드컵 국대감독을 히딩크 감독께서 관심이 높으시니 본선 진출 확정 후 좀 더 많은 지원자 중에서 찾는게 맞을 듯 해서요~~~ㅎ”란 내용의 카톡 문자를 보낸 것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김호곤 위원장은 지난 14일 언론을 통해 “노 총장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보내와 읽고 어이가 없었다. 대꾸할 가치도 없었다”며 “답장조차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히딩크 측의 발언은 신 감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한국에서 논란이 점점 거세지자 히딩크 감독은 14일 자국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대표팀 감독을 맡을 용의가 있는가’란 질문에 그는 “기술위원장, 감독 등 그런 것보다 조언을 해주는 자리에 가깝다”며 감독보다는 조언자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때맞춰 축구협회는 “기술위원회 및 신태용 감독과 협의해 히딩크 감독에게 조언을 구할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요청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축구협회는 이미 본선진출 후 신태용 감독에게 러시아월드컵 본선까지 지휘봉을 맡긴다고 확정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딩크 감독을 기용해야 한다는 네티즌들의 목소리가 높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신 감독이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의 명운이 걸린 이란전과 우즈베키스탄전 2경기 연속 0-0 무승부로 마친 것이 네티즌들의 성화를 불러일으킨 측면이 크다. 어렵사리 조 2위로 본선 진출을 이뤘지만 성에 차지 않은 것이다. 네티즌들의 맹목적인 ‘히딩크 향수’를 탓하기에 앞서 감독은 성적으로 말하는 자리란 점이 선명해진다. 히딩크 감독 만큼 한국축구를 이끌고 월드컵에서 성적을 낸 이가 없다. 히딩크 이후 코엘류,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베어벡, 슈틸리케 등 수많은 외국인 지도자들이 거쳐갔지만 히딩크와 비교대상이 아니다.

이제 히딩크의 본심이 감독이 아닌 조언자에 있는 것으로 밝혀진 만큼 더 이상 논란이 확산되지 않았으면 한다. 히딩크 감독도 괜한 오해를 우려해 “돈 문제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비생산적인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내실을 기해야할 때다. 국민 505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신태용 감독-히딩크 기술고문 체제(26.6%)가 히딩크 단일감독 체제(22.0%)보다 높게 나왔으니 그 방향으로 가면 될 일이다.

눈길을 포항으로 돌려보자. 포항스틸러스는 누가 뭐래도 축구명가이다. 5번의 K리그 우승, 3번의 AFC챔피언스리그 우승, FIFA클럽월드컵 3위 등 그동안의 빛나는 성적이 말해준다. 그러나 지금은 2년 연속 하위스플릿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최근 11경기에서 고작 1승을 거뒀다. 지난 7일 전북현대와의 경기에서 0-4로 참패하면서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최순호(55) 감독 교체를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팬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는 반증이다. 핵심 수비수인 김광석의 부상 공백과 공격력 강화를 위해 영입한 김승대의 7경기 출장정지로 공수에 구멍이 난 것이 부진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감독은 결국 성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자리다. 아무리 내용 있는 축구를 하고, 대외 협력활동을 잘 한다고 해도 성적이 따라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전임 황선홍 감독(현 FC서울 감독)과 브라질 출신 파리아스 감독 역시 입만 열면 “선수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성적을 냈다. 스플릿 이전 남은 4경기에서 극적인 반전을 이루지 못한다면 어떤 상황을 맞으리란 것을 최 감독이 더 잘 알 것이다. 최 감독의 지도력에 의문 부호를 남기는 것은 물론이고 전통 명문구단 포항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최 감독의 위기관리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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