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푸른 비단처럼 빛난다. 가히 땅의 비단을 의미하는 지금(地錦)이라 부를만하다. 성당벽면을 뒤덮은 담쟁이덩굴의 모습이다. 담타기 전문꾼이 만든 결실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아름답다. 방해하는 어떤 세력( 비, 바람, 사람 등)에도 연습과 실행이라는 불굴의 의지로 마침내 한쪽 벽면을 완전히 자신들의 영역으로 만들어버렸다. 전문가다운 저 모습은 끝없이 오르려는 담쟁이의 속성만은 아닐 터. 수천, 수만 번의 연습과 도전을 멈추지 않고 기어 올라가 이 가을 저 담쟁이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가을이 고독을 달고 왔다. 서로 잘 어울린다며 손을 꼭 잡고 왔다. 이제 고요한 상태에서 참다운 본성을 들여다보는 시간. 흐트러진 마음을 다독이며 나 자신과 대면해 깊게 생각하는 사색의 시간이 필요할 때다. 사색의 시간은 곧 회복과 청소의 시간이다. 우리 마음에 껴 있던 혼돈, 켜켜이 쌓인 잡스러움을 걷어낼 계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잔열(殘熱)을 동반한 허허로움이 통증처럼 아려오는 계절 탓만은 아닐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선득선득 살갗이 싱그럽다고 느낀다면 우리의 몸은 이미 고독하다. 정신없이 길을 걷다가 문득 멈춰서 가을 하늘 멍하니 쳐다봤다면 마음속엔 이미 고독이 자리하고 있다는 증거다. 고독은 상실감이나 헐벗은 고통에 가까운 외로움과는 다르다. 고독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가치와 말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나 자신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달콤하지는 않지만 괴로우면서도 필요하다. 열심히 훈련하거나 일부러 시도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즐길 만도 하다. 그러나 때로는 더 고독해지거나, 덜 고독해지기 위해 뜨거운 인절미처럼 완벽히 무장 해제된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어지는 건 인지상정이리라.
가을은 타작의 계절이다. 곡식이 여물면 타작을 해야 하듯. 결실을 알리는 많은 행사로 분답하다. 이삭에서 낟알을 털고, 도리깨로 두들겨 꼬투리에서 알갱이를 털어 거두듯. 일하는 공간, 휴식의 공간, 만남의 공간에는 그들만의 무궁한 이야기의 타작마당도 열리고 있다. 쉼 없이 배우고, 배운 것을 반복해서 익히고, 익힌 것을 실천하기 위해 지난봄의 목마름과 여름의 힘든 숨참을 견디어 왔지 않는가. 쓸쓸하고 묵직하며 공허해서도 아니다. 소리꾼이든 이야기꾼이든 노동의 기쁨, 수확의 기쁨을 맛보려는 축제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하고, 듣고, 보고 기억하는 그 난장(亂場)들의 순간은 소중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상투적인 방식이 아닌 그들만의 새로운 해석을 담고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이야기도 그들의 이야기가 첨가되면 더 이상 낮선 생각이 아니다. 그래서 가을 타작마당은 풍요롭고 분주하면서 그 의미는 배가 된다.
이 가을, 이야기 타작을 하러 가자.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 모르는 이들과 모르는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언어도, 생각도 단순해진다. 낯선 책방에 들어가 모르는 책 구경을 하고 작은 카페에 들려 우연처럼 누군가를 만나 모르는 이야기도 나누어 보자. 나의 미지(未知)가 더 넓어지는 걸 느낄 것이다. 다가가서 그들의 감정과 내면을 살짝 기웃거렸을 뿐인데 나는 이미 그들의 향기에서 묻어나온 여유로움을 함께 느끼고 있을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하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지만 머릿속에 남는 건 이야기다. 자연과 동물과 이야기를 하고 한 폭의 그림 속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야기는 재미의 원천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진가는 그가 살아온 이야기에 있듯 사람은 이름과 함께 이야기를 남긴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다양한 감정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누구나 어느 시기, 어떤 연유에 의해 기쁘거나 행복한, 그리고 슬프거나 우울해 아프게 새겨질 만한 순간을 경험하여 간직하며 산다. 그 순간이 지나면 발생 원인이 무엇이냐에 따라 떠 올리기 좋은 것과 싫은 것으로 양분돼 자연스럽게 기억 속에 내재화 된다. 우리의 기억 창고는 그런 많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삶의 다양한 양분(養分)이 되기도 한다.
이야기꾼이라는 별명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작가는 글로 이야기하고, 음악가는 음악으로, 만화가는 그림으로 그들만의 방식대로 삶과 세상을 성찰하며 이야기한다. 가상의 이야기든, 옛날이야기든 우리 모두는 이 가을 윤기 나는 입담꾼이다. 소통과 방식은 달라도 우리의 삶은 곧 이야기를 만들고 나누는 것이다. 누굴 만나거나 무슨 일을 하던 모두 이야기로 구성된다.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고 자신의 상황에 따라 얼마나 느끼고, 얼마나 다르게 들리는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며칠 전, 작은 미술관에서 낭독행사가 있었다. 작가는 격식 없이 읽고 독자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귀 기우리는 풍성한 이야기의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 소박하고 실용적인 가격으로 운영되는 미술관 한 편의 카페에 앉아 오롯이 자신만을 바라보는 짧은 시간의 호사를 누렸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에스프레소머신에서 내린 커피 한잔 놓고 방금 보고 듣고 온 것들의 이야기를 기억 속에 저장도 하였다. 경험한 것들을 되새기고, 기억을 축적하고, 확장했던 그 짧은 기쁨으로 이 가을이 더 맑고 가벼워진 느낌이다. 아! 나는 지금 막, 더 고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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