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길을 잘못 들었다. 코스모스 때문이었다. 쌉쌀한 가을 햇살에 나란히 줄지어 선 해맑은 코스모스에 시선을 빼앗긴 게 화근이었다. 쉽게 찾을 거라는 안이한 생각과 초행길에 네비도 켜지 않고 길을 나선 내 불찰이 더 컸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속절없이 많이 와버린 길.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
  뒤늦게 네비를 켜 보지만 목적지는 나오지 않는다. 서두르다 두고 나왔는지 휴대폰도 보이지 않는다. 목이 타고 머릿속이 하얘진다. 친구의 집들이로 준비한 트렁크속의 팥 시루떡이 쉬기 전에 가야 한다. 간절함이 기회를 불렸을까. 마침 이곳 지리에 밝다고 자신하는 이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좀 두르긴 해도 나지막한 서쪽 산기슭을 끼고 따라가다 보면 목적지가 나온다고 했다. 어디로든 통하는 게 길이라는 사실을 잠깐 잊었다. 강요된 것들에서 혼자 이탈해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외로움도 누릴만한 호사라 여겨 무작정 나선다.
좁은 산 진입로 기울어진 오르막을 오른다. 차체가 기우뚱 하면서 무성한 풀숲으로 쏠린다. 핸들을 바투 잡고 멀리 산수화에 점 찍힌 인물처럼 드문드문 보이는 산 중턱의 농부들을 본다. 지금 저들은 내년 봄을 맞이하기 위해 버려야 할 것, 거둬야 할 것, 남겨야 할 것들을 헤아리고 선택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때론 마음이 언치거나 놀랐을 때 저들의 가을걷이 지혜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늘 허둥대다 놓치는 것이 많은 오늘 같은 날에도.
바람도 없이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위에 고추잠자리가 유영한다. 비탈진 산기슭의 밭작물과 과수들은 스스로 살아가는 식물처럼 고요한 정적 속에 있다. 자기 생각 조금 줄이고 남 생각 조금 더 받아들이고 그렇게 어울려 살 것만 같은 이웃들의 푸근한 풍경이다. 잘못 든 길에서의 눈 호사다.
 수확한 채소를 가득 실은 트럭 한 대가 뽀얗게 먼지를 날리며 앞서가고 있다. 같은 길을 지나는, 서로 다른 속도와 질감으로 나보다 앞서 길의 한 끝으로 사라지는 자동차. 같이 가는 길이지만 저들이 지나간 이 길과 내가 가야할 길의 끝은 분명 다르다. 이십대의 내 장래희망은 ‘근사한 어른’ 이 되는 것이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 일인지 알고, 옳은 일을 하는 데에 겁먹지 않는 어른. 서툴지만 뜨겁고 애틋한 모든 사랑을 경험한 뒤 더 이상 사랑에 흔들리지 않는 어른.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 가고자 했던 길의 꿈은 소박했다. 욕심껏 내달릴 수 있는 넓고 편한 길은 바라지 않았다. 까마득히 높은 고지를 향해 숨차게 올라 희열하는 정상의 길도 원치 않았다. 그저 후회하지 않고 한탄하지 않는 삶이라면 남들보다 조금 못 미치는 삶의 길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얽매이지 않고 조금은 자유로운 그런 길이길만 갈망했었다.
  산허리를 부여잡고 휘돌아간다. 노근한 오후의 한 나절. 햇살 때문일까. 어미 품을 파고드는 병아리 눈꺼풀처럼 자꾸 눈이 감긴다. 가방을 멘 한 무리의 아이들이 어디론가 날아가듯 뛰어간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부터 빨았을 막대사탕을 입에 물었으니 달콤한 달음박질이다. 저들에겐 멀리 날고 싶은 푸름만 있을 뿐이지 무슨 체면이나 제한이 있겠는가. 흔드는 고사리 손들이 삼색의 한 다발 코스모스 같다. 먼 훗날 제 각각의 길을 가고 있을 다양한 저들의 길이 문득 궁금해진다. 까르르륵 웃음소리에 구름은 밝고 하얗게 서로 뭉쳐 은색의 수채화를 그린다. 투명한 하늘어항을 유영하는 잠자리 떼가 그 수채화 속으로 아득하게 멀어진다.
  멜라니 사프카 노래를 틀고 창문을 연다. ‘The saddest Thing.’ 강렬한 슬픔이 전신으로 느껴진다. 아플 때 더욱 살을 지져 아픔을 깨우치면서 스스로를 극복해 나가라는 슬픔의 따끔한 충고 같다. 짝짓기를 서두르는 귀뚜라미와 하루 빨리 알들을 남기고 떠나야 하는 각다귀들이 부르는 노래는 다음 봄을 잉태하고 생명을 남기려는 사랑의 의지다. 죽음을 예감하는 쇠락의 절정에서의 강렬한 사랑이다. 혹은 삶에 대한 애착을 구가하는 슬픈 소리라 들으니 어딘가 서먹하고 조금은 쓸쓸한 가을이다.
 경사가 있는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가속페달만 밟던 다리가 미처 대처하지 못하고 위태롭게 미끄러진다. 인지하지 못하고 맞았던 내 인생의 내리막길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쌀쌀한 가을바람에 농부들이 땀 흘려 맺은 결실의 잔해들이 길 양편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배시시 드러누워 시선을 강탈하는 빨간 고추의 요염한 자태에 눈이 자꾸 간다. 흙을 내린 밭의 무들이 바지를 내려 엉거주춤 볼일 보려다 들킨 자세로 엉덩이를 내 놓고 있다. 하얀 속살이 푸르게 물들고 있다.
가까운 산사에서 종소리가 들린다. 끊임없이 맑게 울려 퍼진다. 산사에 고통의 종소리가 울려 펴져야 산사가 아름답듯, 내 인생 길에 울렸을 수많은 고통의 종소리는 무엇을 위해 울렸을까. 내 삶에 고통이 존재하는 것은 내 존재의 맑은 종소리를 위함이 아니었을까. 타종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해야 할 일이다. 오늘도 누군가가 종 메로 거칠고 강하게 친다 해도 머리 숙여 감사할 일이다. 저 종소리처럼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위해. 그리고 이 가을 자드락길에서 만난 모든 것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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