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상 전 금융인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의 해질 무렵에 서울 정릉사는 동창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경기도 양주사는 동갑내기 내 친구가 사망했다는 비보다. 올 것은 기어이 오고야 마는 법인가? 내 친구 이름은 장원수다.

사실은 그 친구가 식물인간처럼 병원에 누운 지도 벌써 3년이나 됐다 ‘뇌출혈’이란다. 계속 누워만 있었는데 결국은 말 한마디 못하고 그렇게 됐구나! 싶어서 슬픈 마음에 가슴이 아프다.

포항에서 서울까지 너무 멀다는 이유보다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서울 정릉사는 친구가 병문안을 종종 갔었는데 우리동창 동기회에서도 서울친구한테로 위로금을 전달한 적은 있지만, 이번 여름 지나면 내가 직접 한 번 가봐야지 했는데 끝내 병문안 한 번 가보지 못하고 이렇게 됐다.

우리 고향마을에서는 장원수가 유일한 동갑내기 내 친구였다. 그래서 우리는 더 친하게 지냈다. 철모르던 우리 둘은 그야말로 물장구치고 개구리 잡고, 소 먹이러 다니고 참새 잡다가 장독대 깨고, 6·25때 격전지였던 뒷산에 올라가 탄피를 줍던 어린 시절의 수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원수는 술을 아주 좋아했다. 내가 술 대작이 잘 안 돼서 늘 미안했다. 항상 "술을 좀 줄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정릉사는 동창친구의 고향도 흥해읍 대련리이고 같은 동창이니까 양주사는 고향 친구와는 아주 가깝게 지냈었다. 그러다가 양주친구 장원수가 쓰러져서 병원생활이 시작된 후에는 정릉사는 친구가 우리 동기동창 친구들의 대표격으로 병문안을 자주 다녔었는데, 정릉친구가 포항에 내려올 때면 종종 나와 만나서 양주친구의 병원생활 등 근황을 알려 주곤 했었다.

상태가 완쾌되기는 어렵더라도 어느 정도는 좋아져서 의사소통이 되면 그때 가봐야지 하고, 아직은 시간이 더 남아 있는 줄 잘못 알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그 생각이 잘못이었다. 어쨌든 부고를 받았으니, 다른 친구들한테 연락을 한다며 전화를 하고 메시지를 보내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그런데 옆에서 보고 있던 집사람이 나를 보고 "너무 늦었 네요" 한다.

무슨 말이냐고 하니까 "본인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병문안을 가지 않은 것은 잘못"이란다. 왜냐면 사람은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어도 귀는 열려 있기 때문에‘옆에서 하는 말을 다 듣고 있단다’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가슴이 철렁하고 아찔함까지 느꼈다.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언젠가는 서울에 갈 일이 생기면 그 때 가 봐야지 했는데 정말 너무 늦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창피하기도 하고 부끄럽기까지 하다.

다음날 아침 조문 친구들을 태우고 시동을 걸었다. 내비게이션으로 “양주○○장례식장”을 찍으니 3시간 53분(355㎞)으로 나타난다.

고속도로를 달렸다. 미안한 마음에서 계속 달렸다. 달려도 달려도 도로는 계속 연결되어 있었다. 급한 마음에 양주 땅이라는 곳이 정말 멀긴 멀구나 싶었다. 원수가 고향을 떠나서 정말 먼 곳에 가서 살았구나 싶었다 그래도 달렸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겨우 도착했다.

빈소에 들어서니 원수의 영정 사진과 눈이 딱 마주쳤다 가슴이 쿵하며 눈물이 나왔다. 큰 숨을 한번 내쉬고 눈물을 삼키며 술 한 잔을 올리고 엎드려 절을 하며 용서를 빌었다. 3년 동안이나 친구를 기다리면서 나를 많이 원망 했겠구나. 용서해 달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미안하다. 그래도 너는 다시는 돌아오지도 못할 그 머나먼 길을 떠나가면서도 말 한마디 없었는데, 나는 운전해 오면서 겨우 4시간의 거리를 멀다고 불평했구나.

이 또한 미안 하구나! 그래도 내가 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 줄려고 휴게소에 들어가는 것도 미안해 하면서 이렇게 달려왔으니 나를 용서하고 마음 풀거라. 우리는 동갑내기고향친구니까. 그 동안 사느라고 고생 많았다. 우리동네 동갑내기 고향친구 원수야.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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