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장터 난전. 박스 속에 오글거리는 강아지 한 마리를 선택하기 위해 부부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 들었다 놨다 놈들의 무게를 느끼며 이빨까지 살펴보는 이성적인 남자와 예쁜 털에 눈이 선한 놈을 고르려는 감성적인 여자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저나 나나 완벽하지 않는 미물인 것을. 영문 모르는 강아지들은 유난스럽다는 듯 저들의 손길에 눈을 감고 무심하다.
사흘만이었다. 어렵게 선택받아 입주한 잡종견 둥이 놈한테 덜컥 문제가 생겼다. 외관만 보고 건강하다고, 예쁘다고 데려온 놈의 깊은 속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도무지 밥을 입에 대지 않았다. 먹을 것을 외면하니 애가 타는 건 바라보는 이들이었다. 두고 온 어미젖이 그리워 며칠 저러다 말겠지 한 것이 일주일. 설사를 거듭하던 둥이의 눈동자가 슬슬 풀리면서 숫제 일어나질 못했다. 서둘러 병원으로 내달렸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 했다는 수의사의 말을 듣고 부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장염 앓는 둥이를 입원시켜 놓고 두 사람 간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불편해진 심기는 서로의 기대치에 한참이나 벗어난 선택으로 네 탓, 내 탓으로 돌리기에 이른다. 덩달아 분위기도 팽창해진다. 각자의 목울대에 뜨겁고 뭉클한 붉은 덩어리 하나씩 숨 가쁘게 올라온다. 마침내 목구멍에 도달해 입술포문을 열려는 순간. 이때 재빨리 무기를 꺼내는 쪽이 유리하다. 잘 갈고 닦은 체면이라는 무기를 남자가 잽싸게 꺼내 들었지만 한 발 늦었다. 이미 자존심이라는 무기로 중무장한 여자가 체면이라는 무기에 상당히 상처를 낸 뒤였다. 마주 선 여자와 남자의 호흡이 거칠어진다. 임계점이다.
모듬살이 생을 사는 인간들의 터전인 가정. 격정적이고 지극히 감성적인 여자와, 자신만만하고 지독히도 이성적인 남자가 한 지붕아래 산다. 애초에 태어나기를 완벽하지 않아 조금씩 부족하고 불완전하여 둘만 있어도 필연적으로 갈등 하는 게 사람이 아니던가. 자존심이라는 명품 무기 하나 생명처럼 여기는 여자는 감정 기복이 심해 잘 웃거나 운다. 그녀가 가진 무기 중 단연 으뜸이다. 반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감정표현이 서툰 남자는 소리 내어 웃거나 우는 사람들을 부족하고 헤픈 사람으로 치부한다. 체면이 최고의 무기라 여기는 남자한테는 이해 불가능한 일이다.
태초에 남녀라는 생물학적 차이를 가지고 태어난 탓일까. 원시시대 남자들은 밖에서 얻으려는 본능 때문에 강인함을 내세워 멀리 앞만 보고 사냥했다. 종합적인 판단에 능한 이유였다. 반면 안에서 지키려는 본능 때문인지 여자는 눈을 돌려 가까운 곳의 많은 색을 받아들이면서 섬세했다.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도 하나의 실체를 두고 접근하는 남녀의 방식이 다른 이유다.
그런 것들이 그들의 일상에 심각한 불편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해도 남녀의 이질감은 날로 깊어갔다. 사소한 일상의 부딪힘은 마침내 별일 아닌 것이 별일이 되어 한계점에 다다라 위기를 맞기도 한다. 숫자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여자와, 감각적이지 못한 남자의 부딪힘은 마치 끝나지 않을 샅바싸움 같았다. 언제나 준비된 날선 무기를 앞세워 서로의 부족함을 교묘한 수법으로 간섭하는 자와 용납하지 않는 자로 으르렁거렸다. 때로는 교묘하게 일을 그르쳐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면서 한 치 양보 없이 이기는 싸움만을 지향한다.
애지중지 키우던 둥이를 잃어버린 지도 일 년. 근처 인척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남자와 여자의 발걸음이 동시에 멈췄다. 지나가는 낮선 남자의 자전거 뒤에 둥이가 타고 있는 게 아닌가. 일 년 전 그날. 초저녁 희미한 가로등 밑으로 둥이를 안고 사라지던 도둑의 뒷모습을 발달된 남자의 좌뇌가 빠르게 회전하여 기억해 낸다. 공교롭게도 그 옷을 입고 다시 나타난 남자를 색감이 남다른 여자의 우뇌도 놓칠 리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꼬리치며 쳐다보는 선한 눈빛의 둥이를 어찌 두 사람이 잊을 수 있었을까. 둥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던 날, 남녀는 오랜 시간 명약처럼 우려먹던 서로의 약점을 인정하고 하나가 되었을 때의 소중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틈만 나면 기름 치고 날을 세우던 각자의 무기도 창고 깊숙이 보관하기로 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가 천리다. 이성과 감성의 합일점을 찾아가는 그 과정 또한 만 리다. 자라온 환경과 습관, 성격이 다르니 다툼이 필연적인지도 모른다. 남녀라는 또 다른 너와 내가 완벽한 하나가 될 수는 없다. 다만 서로의 테두리를 이해하고 그 깊이와 넓이를 인정하는 지혜만이 삶을 아름답게 할 일이다. 가정도 좌뇌로 계획하고 우뇌로 이끌어간다면 내실 있는 살림살이를 꾸릴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무기까지 내려놓고 좌뇌의 합리성과 우뇌의 감수성까지 균형 있게 갖춘다면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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