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 (실바노)계산성당 주임신부

이스라엘에는 바다 같은 호수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빠져 죽고 싶어도 가라앉지 않아서 죽을 수도 없는 소금바다 사해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 공생활의 주활동무대이자 생명이 넘치는 제자들이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리게 해주기도 한 갈릴래아 호수이다.
두 호수는 바다같이 넓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만 사해는 생명이 없는 죽음의 호수이고 갈릴래아는 생명이 넘치는 살아있는 호수라는 아주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왜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고 있을까?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갈릴래아 호수는 서로 다른 네 개의 강에서 물을 받아들여 생명을 키우고, 그 물을 다시 사해로 흘려보낸다. 반면에 사해는 갈릴래아 호수로부터 물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다른 곳으로 생명의 물을 나누지 않는다.
생명을 받아서 나누는 호수는 생명이 넘치지만, 받아들이기만 하고 나누지 않는 죽음의 호수가 되어 버렸다.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생명이 넘치는 살아 있는 호수 같은 삶을 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나누지 않고, 나누지 못해서 죽음의 호수처럼 삶이 황폐해진 삶을 살아가는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다.
나는 생명력이 넘치는 갈릴래아 호수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 죽음의 바다로 변한 사해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 먼저 들여다봐야 하겠다.
본당신부로 살아가다 보니까 참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신자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의 삶을 통해 신부도 위안을 얻고 덩달아 행복에 젖어들기도 한다.
어떤 본당에 갔더니, ‘우리 본당에는 부부싸움을 할 때 시작기도를 바치는 부부가 있습니다’하더라. 속으로 웃기고 있네! 라고 생각했다.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궁금해서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 부부를 소개해 주길래 물었다. ″진짜로 부부싸움을 할 때 시작기도를 바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을 한다.
속으로 진짜로 웃기는 이들이네. 그게 가능하냐 했더니… 설명을 하더라.
서로 오고가는 말투, 분위기, 싸울 때가 된 것 같다. 싸우자, 십자가 아래 꿇어 앉아 기도. 그 다음엔 … 했더니, 시작기도와 함께 싸움도 끝!!
기도하면서 무슨 말로 기선을 제압할까! 한 방에 보내버려야 하는데! 이런 생각은 아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배우자를 힘들게 했을까? 반성, 반성–싸움 끝!!
기도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보다도 우선해야할 삶의 모습이다. 아무리 훌륭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하느님이 함께 할 자리가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의 일이 아니다. 우리 삶의 주제는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우리의 작은 생각이나 행동이 교회의 일이 되고 하느님의 일이 되기 위해서는 제일 앞자리에 두고 살아야할 삶의 모습은 기도하는 것이다.
날마다 기도하고,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여야 삶의 모습도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너무 많은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니까 기도할 시간이 없다.
기도 안하니까 하느님의 뜻을 모른다. 그러다 보니까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내 욕심대로만 산다. 일상에 바빴던 예수님도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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