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밤새 싸락눈이 왔다. ‘싸락싸락’ 치는 소리는 건너 방 할아버지의 잔기침 소리와 하모니를 이뤄 잔잔한 반복 음이 되어 내렸다. 아랫목 이불속에서 분탕질하던 아이들이 꿈나라로 갔다. 눈 덮인 가시덤불 속 오목눈이도 낮에 두고 온 낟알 한 톨 못내 아쉬워하다 잠들었다. 구멍 뚫린 양말을 깁던 화롯가의 어머니마저 비어가는 독에 하얀 쌀 채우는 꿈꾸며 잠든 밤. 손님이 다녀갔다.
싸락눈을 밟으며 조용히 왔다간 손님의 흔적은 고방의 보리쌀 두어 됫박과 작은 발자국이었다. 놀란 토끼 눈으로 문고리를 잡고 밖을 내다보던 어린것들을 아버지는 다시 아랫목으로 돌려보내고 발자국을 따라 나섰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선지 아버지가 뒤돌아 왔다.
겨울은 길고 추웠다. 아버지의 겨울은 더 그랬다. 겨울은 계절만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어렵고 힘든 나날, 궁리를 거듭해도 해결의 방안이 모색되지 않는 시간은 모두 아버지의 겨울인 셈이었다. 지난 가을. 곡식 한 톨, 채전 밭 잎사귀 하나까지 챙겨보아도 작은 고방 하나 채울 여유는 없었다. 소작농들의 형편들이 그렇듯, 금년 농사의 일부는 작년에 진 빚을 갚고 나면 빚은 또 남았기 때문이었다. 유년의 우리 집 고방이 그러했으니 가장으로써 고방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고충은 컸다.
구원의 신호일까. 며칠 보이지 않던 벌판 외딴집 굴뚝에 연기가 오르던 날 아침. 좀체 부엌 출입을 않던 아버지가 부엌에 들렸다. 아궁이에 잔 나뭇가지를 밀어 넣으며 풍구를 돌리는 어머니와 두런두런 오랫동안 많은 애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늘 양심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게 사람다움이라고 했다. 우리들이 나쁜 짓을 해 볼기짝을 때릴 때도,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려 회초리를 들 때도 누누이 그 말을 강조했다. 어린 우리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렴풋이 나누며 살라는 말임을 알 수 있었다.
  들판 외딴집 새댁은 앉은뱅이 들꽃 사이에 홀로 핀 하얀 들국화 같았다. 고깃배를 타고 돈 벌러 바다로 나갔던 천씨가 이 년 만에 만삭이 된 새댁 손을 잡고 마을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적잖이 놀랐다. 일찍 상처를 하고 마흔이 되도록 몸이 불편한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던 그가 헌칠한 키에 젊은 미모의 여성을 데려온 것이었다. 앳돼 보이는 얼굴에 선한 눈매. 수줍음도 많았다.
이듬해 딸 쌍둥이를 낳아 키우며 바지런하고 손끝이 매운 새댁은 한 뼘 텃밭도 놀리지 않고 푸성귀를 심고 일거리를 찾아 생계를 꾸렸다. 그러나 땅뙈기 하나 없이 다섯 식구가 살아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굶는 날이 많아지자 천씨는 여자 넷만 오롯이 남겨두고 다시 고깃배를 타러 나갔다. 가장이 없는 외딴집의 긴 겨울, 또한 생과 사의 사선(死線)이었다.
오는 봄을 쉽사리 용납 않겠다는 듯 막바지 겨울의 기세는 드셌다. 비어가는 고방엔 거미줄만 늘어갔다. 우리들의 얼굴에도 허연 마른버짐이 여기저기 꽃을 피웠다. 아직 봄은 멀리 있는데 외딴집 굴뚝에도 연기가 오르지 않는 날이 잦았다. 밥을 먹지 못하고 있다는 그 뚜렷한 증거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안색도 어두워져만 갔다. 한계점이었다. 설상가상 돈을 벌어 오리라 굳게 믿고 있었던 천씨는 어느 날 다리를 다쳐 목발을 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보리쌀 두어 바가지를 들고 외딴집을 다녀온 어머니는 새댁의 빈 젖을 빨다 잠든 쌍둥이가 안타까워 눈물을 훔치셨다.
  여느 때보다 이른 시각. 아버지의 풍구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구수한 소여물 냄새가 아랫목 낡은 이불속까지 스며들었다.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보리쌀 씻는 소리가 들렸다. 친근한 일상의 그 소리들은 우리들의 아침잠을 깨우거나 끼 때를 알리는 정겨운 소리였다. 누렁이도, 우리도 살아가는 또 다른 삶의 소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평범한 일상의 것들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라는 걸 그 겨울은 혹독하게 알려줬다. 입맛이 없으신지 두어 숟가락 뜨던 아버지가 아침 밥상을 물리고 서둘러 일어나셨다. 어디 멀리 출타라도 하시려는지 어머니가 내민 두툼한 목도리를 야물게 여미셨다.
  이러루, 어저저 음메. 그토록 기다리던 봄은 돌아왔다. 그러나 소여물 냄새와 뿌연 김 가득했던 외양간엔 누렁이가 없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논밭에도 누렁이는 보이지 않았다. 혓바닥에 닳아 나뭇결 반들반들한 여물통과 함께 사라진 외양간의 누렁이. 아버지의 재산목록 일호였던 누렁이는 그렇게 그해 겨울 두 집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고 사라졌다.
  삭은 울바자처럼 삶이 송두리째 스러져가던 그해 겨울. 더불어 사는 원리를 본능적으로 느꼈을까.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우러 그에 따라 행동하고 실천했던 아버지의 사람다움을 보았다. ‘내가 자식에게 가르칠 게 있다면 내 삶을 보여주는 것 밖에 없다.’ 는 당신의 결기 같은 것도 그때 느껴졌다. 어느 음식점 벽에 걸린 액자 속에 ‘먹는 일이 사랑이란 걸 알았습니다.’ 라는 말이 생각난다. 밥은 단순히 먹는 음식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 배면엔 사랑보다 더한 쉽고도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일상을 견디는 숙명적인 삶을 의미한다. 내가 살아있음이 곧 밥이라는 사실을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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