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홍 시인·지유여행가

요즘은 어딜 가나 노인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누구에게나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고, 일가친척 중에도 고령이신 분이 계실 터이니 이래저래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나라도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점차 사회적 문제로 부각될 것이기에 다각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른 아침 운동을 나가면 많은 노인들이 모여 걷고, 달리고, 체조나 기구운동을 합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밤늦게 술을 마시는 노인들 모임도 더러 보게 됩니다. 술에 너무 취해 서로 싸우는 장면을 목격할 때도 있습니다. 사회적 행동 양상을 놓고 볼 때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도 노인들에게는 ‘노인문제’라는 말이 따라다니게 됩니다. 아마 노인 분들이 들으면 섭섭하게 생각할지 모르나 염연한 현실입니다. 고령화 추세를 놓고 노인을 ‘문제’로 받아들이는 의견이지요. 복지프로그램부터 노인 일자리 문제 등 다양한 의견이 논의되지만 그런 의견들이 실질적인 노인복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노인 스스로 자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노인을 모두 보살핌을 받아야 할 문제의 대상으로 판단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노인을 섬김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사회 풍토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노인을 타자로 대하는 안목 자체가 노인분들을 더 슬프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미입니다.

얼마 전 약속이 있어 커피숍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조명이 밝고 책을 읽기에 좋은 분위기라서 그런지 노트북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하거나 공부하는 젊은이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한쪽 구석자리에 팔순이 훨씬 넘어 보이는 백발 노인 한 분이 코밑에다 책을 들이대고 독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노인은 오직 책을 읽는 일에만 집중하고 가끔 노트에다 뭔가를 메모하기도 했습니다. 그 장면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선한 충격으로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몇 해전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갔을 때도 나무그늘에서 편안한 자세로 독서에 열중하는 노인분들을 본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 책을 읽지 않는 게 아니라 책을 읽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인을 대상으로 한 독서 프로그램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본 기억이 없습니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책보다 더 좋은 위안이 없고, 책에서 얻는 자양분만큼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보약이 없을 것입니다. 책만큼 주체적 삶의 의지를 북돋워주는 것도 없을 겁니다. 결론은 노인일수록 책을 더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이나 평생교육원 같은 곳에서 노인을 위한 독서프로그램 운영이 필요해 보입니다.

꾸준하게 독서하는 사람은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전해주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다고 합니다. 아마 그 말은 단순히 책에서 기인하는 게 아니라 인생 경험을 통한 우리 정신의 스펙트럼이 매 순간 달라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열심히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풍부한 인생경험에 독서까지 겸비한다면 어느 누가 노인을 문제의 대상으로 생각하겠습니까. 찬바람이 불면서 가을이 찾아오자 나무들은 스스로 불태우고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흔듭니다. 이듬해 초록 싹을 틔우기 위해 봄을 저장하는 중이라고 낙엽이 말합니다. 약간 춥지만 낙엽지는 나무의자에 앉아 잠시라도 책 읽는 주말 보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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