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태 전 포항정책연구소장

자주 가는 가게에서 듣고 싶은 말이 있다. 내 이야기를 받아들여 주는 말이다. ‘전에 이 시각에 빵이 나왔는데요?’ 하면 그냥 쳐다 보는 것이 아니라 ‘아 그러세요’ 하면서 일단 웃어주면 되겠다. 무덤덤하게 ‘아직 빵이 안 나왔는데요’ 하면 그래서 평소와 같은 시각에 온 내가 잘못했다는 건가. 나 보고 일찍 와서 미안하다는 사과라도 하란 말인지. 조금 멀어도 굳이 그 빵집에 가는 이유는 편리함도 있지만 최소한의 ‘소속감’ 때문이다.

‘삶에는 행복 이상의 뭔가가 있다’는 에밀리 에스파하니 스미스의 테드(TED) 강연에 접속자가 대단하다.
“친구 조나단은 매일 아침 뉴욕에 있는 거리의 상인에게서 신문을 삽니다. 그들은 단지 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느긋하게 말하고, 서로 사람으로 대하는 시간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한번은 조나단이 잔돈이 없었고, 그 상인은 ‘걱정하지 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조나단은 돈을 지불하겠다며 다른 가게에 가서 필요 없는 것을 산 후 그 상인에게 돈을 주자 받지 않았습니다. 상처를 받은 것이죠. 조나단에게 뭔가 친절하게 대하려고 했지만 그 친절이 거부당한 것입니다.”

조나단과 상인은 최소한의 소속감을 느끼고 있었다. 소속감이란 반드시 조직이나 집단에 속해 있을 때 생기는 게 아니다. 늘 해 오던 것에 대한 존중이나 예의이다. ‘늘 마시던 걸로’라는 주문이 얼마나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하는지 모른다. 아예 이런 말도 필요 없이 단골이 나타나면 알아서 척척 내주는 형사 콜롬보 같은 바리스타가 있으면 소속감을 넘어 충성심마저 발동한다.

음식에 머리카락이 나올 수도 있고 또 이를 점잖게 주인에게 말할 수 있는 권리도 분명히 손님에게는 있다. 중요한 것은 상호 태도이다. 난장판을 벌이기라도 하듯이 호통을 치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재발을 방지하도록 도와주는 ‘제안’이 있다. 주인 또한 충분히 잘못을 인정하면서 품위와 유머를 곁들여 손님의 건의를 기꺼이 받아들이면 된다. 우선 ‘아 그러세요’라고 수긍을 하는 게 중요하다. 일본어로 ‘아 소오데스까’이다. 손님이 가리키는 머리카락을 보고 먼저 어떤 손해도 보지 않으려는 표정으로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이상하다, 확인해 보겠다’ 등의 반응은 가급적 안 하는 게 좋다. 꼭 필요하면 나중에 하던지. 일단 손님 지적에 공감하는 태도가 먼저다. 기왕이면 정중하게 군소리 없이 손님의 지적을 받아들이면 된다. 마치 ‘너 갑질한다고 동네방네 떠들어버릴 테다’라는 과도한 방어심리는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래서는 관광이고 경제 활성화고 뭐고 물 건너 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병원 주차장 기계설비에 차를 입고할 때 초소형 자동차 안테나까지 운전자가 직접 뽑아야 하는 경우란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키 작은 운전자는 차 지붕 위 안테나를 뽑기가 어렵다. 관리자가 도와주면 금방 해결이 된다. 전혀 시설에 걸리지도 않는 작은 안테나를 직접 뽑도록 강요하는 주차시설에 금전을 지불하고 싶은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다. 직원이 친절하기라도 하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으름장에 가까운 ‘행동 지도’에 어느 누가 차를 맡기고 그 병원을 다시 찾겠나. 약국에 가서 어떤 약에 대해 질문을 했을 때 친절하고 상냥하게 약과 증세에 대해 환자에게 알려 주는 것은 서비스 이전에 약사로서 최소한의 의무다. 아파서 약을 사러 오는 사람에게 마치 돌이나 나무 같은 태도로 임한다면 약국을 닫는 게 좋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 단추를 눌러 잡아주고 이에 대해 가벼운 답례를 하고 적당한 거리를 띄워 서는 일은 기본중의 기본 에티켓이다. 애써 잡아줬는데도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는 것은 무례함을 넘어 저급한 행동이다. 좁은 공간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트림이나 기침 등 고약한 가스 배출은 교양인으로서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는 킹스맨 영화 명대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버릇 없는 불한당을 혼내 주는 잘 생긴 주인공의 멋진 활극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보내게 된다.

남에게 폐 끼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일본 관습이 회자되곤 한다. ‘오모테나시’ 문화가 트럼프 대통령 방문을 전후하여 인용되기도 했다. 사람을 대할 때 정성을 다하여 대한다는 의미다. 성경에도 나오듯이 ‘나그네 접대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우리나라 전통에도 중요한 부분이다. 지나는 과객이 하룻밤을 묵어가는 경우도 옛날 이야기 단골 메뉴다. 진정성이 의심받을 정도로 미국 대통령 환대가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과도한 친절이 상대를 부담스럽게 하는 것은 맞는 얘기다. 그러나 미흡한 서비스로 고객의 마음과 발걸음을 끊어버리는 것보다는 낫다.

얼마 전 소피아라 불리는 로봇이 유엔 회의에서 발언을 했다. 예순 가지가 넘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 처음 보면 사람으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다. 표정은 배우 오드리 헵번을 본 떠 개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처럼 웃기도, 눈을 깜빡이기도 하고 심지어 농담도 한다. 인공지능 심층학습 기술이 탑재돼 있어 상대방의 리액션과 표정, 말 등을 기억해 대화를 거듭할수록 더 똑똑한 답변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마침내 사우디아라비아 시민권을 획득하는 데까지 진화했다고 한다. 적어도 로봇 따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적인’ 친절이 고객의 마음과 지갑을 열어 경제 회생의 마지막 카드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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