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부사장 이창형

강진피해를 입은 포항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인도의 서사시‘마하바라타’에는 비슈누신의 원반에 맞아 피를 흘린 아수라들이 공격을 당해 아수라들의 시체가 산처럼 겹겹이 쌓여있는 모습이 나온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를 아수라장이라 부르는 것도 여기서 유래됐다.


2017년 11월15일 오후 2시 29분.

포항은 규모 5.4강진에 전쟁터를 방불케하고 있다.

지난해 인근 경주에서 발생했던 진도 5.8 규모보다 약한 것이었지만 진앙지가 경주 때의 13km보다 5~6km 더 얕고 포항 북부 지역에 노후 건물들이 많아 실제 느낀 진동과 피해는 훨씬 더 컸다.

문제는 이번 지진을 지켜보면서 정부와 자치단체의 대응책이 종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경주 지진 이후 정부와 지자체는 한국도 더 이상 지진안전지대가 아니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1년이 지나도록 경주 여진이 수백차례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활성단층이니 양산단층이니 문제만 제기했을뿐 어떤 원인규명 작업도 없다.

포항 지진에서도 지질전문가들의 검증되지 않은 전망만 봇물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모두 가설이라고 하지만 지진피해를 거듭 겪고 있는 동남권 주민들은 누구를 믿고 대처해야 하는지 아연실색이다. 정부가 국민들을 상대로 지진 테스트를 하는 겪이다.

피해주민들이 가장 혐오를 보인 것은 정치권의 여전한 일회성 호들갑이다.

여야 지도부는 16일 일제히 포항 피해현장을 찾았다.

피해상황을 점검하고 주민들을 위로 격려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떼거리로 몰려와 사진만 찍고 가는 보여주기식 방문은 여전히 눈총을 받았다.

정치인들의 허언은 이번 피해현장에서도 앵무새처럼 되풀이 됐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내진설비를 강화하고 이에 대한 세제지원도 추진하겠다. 경주와 포항 등이 원전 밀집지역이기 때문에 이 일대 활성단층 조사에 속도를 내야 한다” 등등.

여야 정치인들은 지난해 경주 지진현장에서도 똑 같은 말을 쏟아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반문하고 싶다.

지자체 차원에서의 사후 대처 능력도 부실했다.

포항시는 지진 발생 이후 대책본부를 즉각 가동하는 등 나름 민첩하게 대응했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지진 당일 밤 조치를 보면 여전히 원시적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진앙지 부근인 흥해읍을 중심으로 장량동 등 일대에서 집중적인 피해가 발생했지만 이재민들은 지진대피소를 제때 확인하지 못해 밤새 추위와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포항시가 곳곳에 지진대피소를 설치하고 지진대피 웹 지도도 구축했다고 밝혔으나 정작 실제상황에선 이재민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이다.

본진 이후 여진이 계속되면서 무너지고 금이 간 자신의 집에 들어가지 못한 주민들은 어디로 대피할지 몰라 밤새 시내를 전전하거나 차 안에서 밤을 새기 일쑤였다.

피해신고와 응급복구 등의 조치도 부실했다.

포항시 재난신고센터의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고 도심 피해지역 외 농촌마을에서는 무너진 담장이 마을 골목을 덮치면서 차량통행도 안되고 있다.

홀로 사는 어르신들은 쩍 벌어진 주택 벽체를 망연자실 쳐다보며 밤새 계속된 여진에 놀라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누구하나 지진대피소로 안내하는 인력이 없었다.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천재지변은 아직까지 인간의 힘으로 막기가 어렵다.

자연의 재앙은 전혀 예측하지 못할 때 불쑥, 크게 찾아들기 때문이다.


99%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단 1%의 가능성이 있다면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천재지변이다.
궁극적인 내진대책 마련과 함께 강진 대비 건축물 안전점검의 상시화, 정기적인 대피훈련은 당연히 교과서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일단 사태가 발생한 이후의 신속한 수습이다.

일사분란한 조직체계가 실시간으로 작동돼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유기적인 협조체계 구축은 기본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재난을 당한 피해주민들의 체감도를 얼마만큼 수용할 수 있느냐이다.

다행스럽게 지금 포항은 자원봉사자들의 물결로 피해복구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는 피해주민들과 함께 재난을 함께 극복하고자 추위에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이웃들에게 전국민들이 응원을 보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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