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허용하는 음식물·선물·경조사비 상한액을 일컫는 이른바 ‘3·5·10’규정을 개정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정부는 물론, 당장 피해 당사자인 농축산어업인들은 이번 개정안이 통과돼 미약하지만 농어촌경제에 활력을 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또 한번 실망하는 표정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7일 오후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했으나 격론 끝에 부결했다.
위원회는 박은정 권익위원장을 포함해 총 15명이지만 박 위원장은 이날 국회 정무위 참석 등 외부 일정을 이유로 불참했고 사무처장은 공석이며, 위원 1명도 불참해 이날 전원위원회에는 12명이 참석했다.    

관련법상 위원회는 재적 위원 과반수 출석으로 개의하고, 출석위원 과반수를 넘어야 의결하는데, 이날 개정안에는 12명 중 찬성 6명·반대 5명·기권 1명으로 찬성이 1명 더 많지만, 과반을 넘지 못해 부결됐다.    

권익위는 이날 전원위에서 공직자 등에게 제공 가능한 선물 상한액을 농축수산품에 한해 기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의결한 뒤 당정협의를 거쳐 29일 대국민보고대회에서 공식 발표할 예정이었다.

농축수산인과 화훼농가가 소비위축에 따른 매출감소 애로를 호소했고, 정부에서도 개정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제기해 왔다. 

 청탁금지법의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도 한국행정연구원의 ‘청탁금지법 시행의 경제영향분석’ 결과 농축수산인들의 손해를 보전해줄 필요가 있다고 보고 ▲식사비는 3만원→5만원 ▲선물비는 농축수산물에 한해 5만원→10만원으로 상향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지난 16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 보고했다.

하지만 개정 반대론자들은 ‘시행한 지 1년밖에 안 된 청탁금지법을 한 번 손을 대기 시작하면 개정요구가 우후죽순 이어지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제기했고, 이같은 우려가 이날 표결에서 드러난 셈이다.

청탁금지법은 불과 1년여 만에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부정한 청탁과 접대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법 덕분에 공직 사회에서 청탁과 접대가 눈에 띄게 줄고 학부모들의 촌지 부담도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도 권익위가 스스로 시행령 개정에 나선 것은 이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구제 범위를 넓혔다가는 청탁금지법의 기본 틀마저 흔들 위험이 있어 권익위의 고민도 그만큼 깊었을 것 같다.

다만, 향후 시행령을 개정하더라도 법의 원래 취지를 지킬 수 있으면서도 이 법의 상대적 피해자격인 농축산인들의 입장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충분한 여론수렴 절차를 거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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