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태 전 포항정책연구소장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 외교가 볼거리는 있지만 그다지 매끄럽게 돌아가는 것 같지는 않다. 국가간 협상이 여의치 않을 경우 안정과 평화를 위한 선택지는 뻔하다. 지방정부간 협력과 연계를 도모하는 ‘지방 정부의 외교 권한 강화’다. 마침 국제기구인 동북아지역 자치단체연합사무국(NEAR : The Association of North East Asia Regional Governments)이 포항테크노파크 본부동 3층에 있다. 경북 포항에 이런 국제기구가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포항이 국제도시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외국인들이 더구나 그 나라 공무원들이 이 곳에 파견 근무를 한다는 것 또한 대단한 일이다. NEAR는, 동북아시아 국가 광역 자치단체인 주(州), 성(省), 도(道), 현(縣), 아이막(aimag), 광역시로 구성된 독립적인 지방 협력기구로서, 포항에 있는 상설 사무국에는 사무총장, 사무차장, 기획총무과, 국제협력과, 분야별 전문위원과 파견 직원들로 구성돼 있다. 1996년 9월 창립되어 현재 중국·일본·한국·몽골·북한·러시아 6개국 77개 광역 자치 단체 6억 6,500만 명의 인구를 포괄한다. 이 국제기구는 호혜·평등 정신을 바탕으로 교류와 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동북아지역 공동 발전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회원 단체에 전문 지식과 정보 등을 제공하여 각종 문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활동도 한다.

이 지역에는 독도 문제를 비롯하여 남사군도, 북방 4개 도서 등 다양한 외교 현안이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 핵 문제가 가장 크고 뜨거운 문제다. 국가적인 이슈이지만 의외로 지역 차원에서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국가간에 적용되던 질서와 논리가 본질적으로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과 서양으로 크게 나눠진 지구촌의 문화나 관습도 민족과 인종, 지역에 따라 이해관계가 커졌다. 한 때 통합의 길로 달리던 유럽 사회는 이제 한 나라안에서도 독립을 주장하는 지방 정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국 스코틀랜드와 스페인 카탈루냐가 그러하고 이탈리아 북동부 롬바르디아도 가난한 남쪽 지방을 먹여 살리느니 차라리 딴 살림을 차려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지방 분권의 국제화 시대다.

스코틀랜드는 북해 유전과 가스에 관한 사업권 등 오늘날의 경제적인 이유와 오랜 역사적 배경을 이유로 틈나는 대로 잉글랜드와 분리 독립을 추진하고 있다. 민족과 언어가 다른 나라가 언제까지 연합 형태를 유지해야 하는가 하는 입장이다. 스페인 영토의 6%에 불과한 인구 750만의 카탈루냐 지방은 각종 산업이 발달해 있고 유명 관광지를 보유하고 있어 스페인 국내 총생산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국민 경제에 기여하는 부담에 비해 빈약한 예산 분배에 대해 불만을 토로해 왔다. 스코틀랜드 경우와 마찬가지로 카탈루냐도 스페인과 문화와 언어가 달라 끊임없이 독립을 시도하고 있다.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사례 또한 민족 정체성 문제로 비화된 경제적 갈등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매년 800억 유로를 국고에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중앙 로마 정부의 약탈과 다름 없다는 것으로 분리 독립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중앙 정부의 지방 정부에 대한 경제 보조의 합리성 문제로 인한 분리 독립은 세계적인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중국과 같은 소수민족 국가는 더욱 가속화될 수도 있다.

유럽을 참고하여 경제통합을 타진해 오던 한ㆍ중ㆍ일도 이제는 각자 갈 길을 가는 게 옳다고 보는 것 같다. 고속 경제성장이 자리를 잡은 중국은 구태여 일본과 한국을 대등하게 생각할 필요성이 희박해졌다. 일본은 일백 년 이상 실험해 온 탈아시아 정책을 변경할 의미나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 한국도 핵 질서 등 기본적인 구도 변형에 따라 의외로 통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어 중국과 일본에 낮은 자세로 임할 이유가 없다. 정리하자면 국가간 외교적 합의가 쉽사리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방 정부의 외교적 활동이 강화될 것으로 보며 그에 따라 외교권한 확대도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방 분권이 한창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외국 지자체와의 교섭권을 지방 정부에 대폭 할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제 질서의 흐름을 간파하는 글로벌 협상력과 ‘외교력’을 갖추고 해외 시장에 지역 특산물을 얼마나 수출할 수 있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유언비어나 얄팍한 술수만으로는 글로벌 시대 지방정부 수반으로서 적절치 않다. 외국 정부와 기업 관계자들을 들었다 놨다 능수능란하게 주무를 수완을 갖추고 실질적인 투자 계약서와 자금을 들고 오게 하는 강한 흡입력이 필요하다. 지방 정부의 외교가 지역사회 존립에 필요충분 조건이 된 지금은 국제 문제 전문가, 글로벌 협상 프로가 지방 정부에도 넘쳐나야 한다.

’11.15 재난’ 이후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규모 사절단이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국가로 나가서 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지금은 53만 포항 시민이 마음을 합하여 국제 협력을 통해 일단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것이 먼저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외교부가 우리 외교 전면에 나서지 못하면 지방 정부의 외교력이라도 제대로 발휘해야 할 때다. 마침 우리 ‘가까이(near)’에 있는 NEAR를 충분히 활용할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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