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실바노) 계산성당 주임신부

일등이 아니면 알아주지 않는 사회, 운동도 일등, 공부도 일등. 일등을 추구하는, 최고만을 고집하는 사회현상은 여러 곳에서 부작용으로 드러나고 있다.

일등을 안 해도 되는 부분에서도 일등을 차지하는 부분이 많다. 교통사고율(오토바이), 이혼율이 그렇다.
옛날에는 시집가는 딸에게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이라고 했다는데 요즘은 딸 시집보내면서 ‘가서 살다가 힘들면 언제든지 다시 오너라’한단다. 스스로 오지 않으면 아예 쳐들어가서 강제로 데리고 가기도 한단다.

러시아 속담에 보면, 전쟁터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바다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고 한단다. 결혼을 해서 한평생을 함께 산다는 것은 전쟁터보다,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는 것보다 훨씬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시대적으로 가정이 상당히 많은 위협을 받고 있음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성격 차이 때문에, 배우자에 대한 신뢰의 상실 때문이기도 하다는데…. 이런 이유들이 생겨나는 근본은 결혼을 준비하는 데서부터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과 혼인 면담을 하다보면 가끔씩 듣는 말이다. 왜 결혼하려 하는가?
신랑은 혼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이 귀찮아서, 신부는 혼자서 벌어먹기도 힘들고 혼자 사는 게 무섭기도 하고…. 파출부, 보디가드나 두자고 결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도 내적인 삶을 가꾸기보다는 외적인 것에 치우쳐 있다. (혼수를 어떻게 준비해야 기죽지 않고 살아갈까…주일도 안 지키고 외적준비에 몇 달씩 보내기도 한다.) 성사혼NO, 관면혼도 혼인미사를 안 하고 전부 예식장으로만 향한다. 주보공지는 혼인미사가 있는 것은 혼인성사가 아니라 요식행위다.

결혼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 사랑은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닐 것이다. (사랑만 하면 모든 어려움을 다 이겨낼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다.) 그 사랑에는 하느님 사랑이 함께 해야 한다. 하느님 모상을 닮은 그 사랑을 함께 나누고자 해야 한다. 그래야 시련이 닥쳐와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하고 있는 가정이라면 그런 부부의 삶 때문에 자녀들도 그 사랑을 받고 자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래서 건강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 신앙 안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비뚤어질 수가 없다.)
집이 크고 아름답다고 사람마저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인 능력이 조금 떨어진다고 사람마저 초라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꼭 새겨봐야 할 가정의 모습이다. 이런 삶의 모습을 기초로 바오로 사도는 둘째 독서에서 우리에게 권고하고 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 남편은 아내를 사랑,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 아버지는 자녀들을 들볶지 말라!

마음이 착해서, 천성이 유순해서 순명과 화목을 잘하고, 봉사와 헌신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자세를 겸손하게 낮추고, 말씀 안에 살아가려고 애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예수, 마리아, 요셉이 이룬 가정을 성가정이라고 하는 이유도 그 가정의 중심이, 주인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당신이 함께 있어 주어서 행복합니다'라고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선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정이 바로 성가정이 될 것이다.

올 한해는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 일에, 당신이 함께 있어 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가정이 많아지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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