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태 전 포항정책연구소장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가. 이 문장은 어딘가 잘못 되었다. 기술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지 스스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얼마나 기술을 발전시킬 것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이유는 크게 두 관점에서 짚어볼 수 있다. 그것이 필요한 사람의 관점과 이를 통해 돈을 버는 사람들 관점이다. 필요한 사람 관점에서 보면 대부분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이 나타난다. 바둑 잘 두는 기계가 필요한지, 로비에서 중얼거리는 움직이는 장치가 있어야 하는지, 여자의 얼굴을 한 로봇이 유엔총회에서 사람을 흉내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분명 나는 인문학 분야 무지렁이가 맞다. 자동차 운전도 잘 못한다고 맨날 핀잔을 들으며 살아가고 있다. 기차표도 인터넷으로 구매하지 못하고 여행 같은 것을 어떻게 휴대폰 안에서 다 예매하고 항공권을 처리하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아날로그 세상으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다. 현재 나와 있는 기술이라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익숙해진 다음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 되지 않겠나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인간이 기술에, 아니 기계에 적응하는 기간을 적어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찰리 채플린 무성영화처럼 인간이 오히려 기계의 일부처럼 볼트나 나사처럼 변해가는 세상이 대체 어떤 존재의 섭리이며, 어느 누구의 의도란 말인가. 왜 인간이 기계에 순응해야 하는가. 기계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무능한 인간이 되고 마는가. 무수한 질문이 터져 나온다. 답을 듣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달력이 한 장 밖에 남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뒷장의 작은 글씨로 된 내년도 달력을 훑어보게 된다. 또 내년에는 무슨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내년 이 맘 때가 되면 모두가 과거로 흘러갈 일들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냥 달력을 휘리릭 넘겨서 그냥 2028년이라고 하면 뭐가 달라질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을 것이고 새로운 인류가 태어나서 햇빛을 보고 있을 것이며 없는 것만도 못한 10년 세월을 꾸역 꾸역 넘기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생의 마지막 기간을 꼭꼭 음미하면서 보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라는 것은 한낱 숫자 놀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나이라는 것 또한 사람의 자유를 앗아가는 악마적 도구에 불과한 것이라는 철학적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너는 그 나이에 아직도…’라는 말은 인류가 들을 최후의 무거운 징벌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직도 졸업을 못하고, 취직을 못하고, 승진을 못하고,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고, 당선을 못하고, 출품을 못하고, 합격을 못하고…그러면서 또 한 해를 맞는다.

인간은 비척거리고 있는데 기술은 너무나도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차가운 기계가 따뜻한 인간의 가슴을 조롱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내버려 둘 수가 없다. 문명이, 기술이, 세계가 시간과 손을 잡고 달려 나가면 나갈수록 우리는 더욱 인간적이어야 한다. 내년에도, 새 해에도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좋은 것을 나누고 슬픔과 아픔을 달래며 어떤 일에 놀라며, 어이가 없는 일을 함께 분노하며, 재잘거리며 먹고 마시며 한 해를 살아가야 한다. 친구나 동지가 있고 ‘반려’가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두꺼운 종이 한 장을 또 넘기게 될 것이다. 또 새 해를, 그리고 그 다음 해를 맞게 된다. 막연한 젊은 앞날과 또 여름 날의 느린 오후 같은 노년, 살아 있어도 그렇다고 할 수 없는 삶을 언젠가 묵묵히 받아들여야 한다.

손 때 묻은 세간과 정든 내음이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권리와 자유가 구속되는 피난 시설에서, 아직 흔들리는 땅이 마음을 산란하게 하여도 나의 정신이 빙빙 돌아가는 세상의 중심 축이라도 되는 듯 또 한 해를 보내고 맞는다. 오래 연락이 끊어진 이들의 프로필 사진 속에서 훌쩍 커버린 아이들 모습에서 위안을 얻는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자라날 아이들은 그래도 자라나고 있었구나.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짓는 미소는 도저히 감출 수가 없다. 나도 이런 시절이 있었겠구나 하는 회상과 우리 아이도 이런 시기가 있었지 하는 기억으로 또 한 해를 기대하게 된다. 충실한 기억만큼 미래로 나아갈 힘이 되는 것은 없다.

점점 영리해져 가는 기계는 인간의 삶에 다양한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우리 기억을 디지털화해 저장한다는 아이디어는 여러 가지 불안을 불러일으키지만 인간의 행복감을 높여 주는 일도 있다. 인공지능을 통한 기억력 향상은 알츠하이머나 치매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는 인생을 바꿀만한 기술이 될 수 있다고 로봇 비서를 개발한 사람이 설명한다. 페이스북 대표는‘머릿속의 생각을 뇌파를 이용해 텍스트 문자메시지로 바꾸는 비침투적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분당 100자의 단어를 전송하게 되면 사람이 문자를 입력하는 것보다 다섯 배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황당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도 인간이 언젠가 무선 뇌-컴퓨터 접속기술로 소통하게 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모두는 인간의 언어를 대체하는 기술이다.

내년에 사람 나이로 다섯 살쯤 된다는 ‘똑똑한 기계와의 공존’이 앞으로 인간이 해야 할 중요한 일로 대두되고 있다.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이 오랫동안 명저로 군림하고 있다.이제 ‘인공지능(AI)관계론’을 써봐야 할 때가 되었나 싶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