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실바노) 계산성당 주임신부

달력은 아직 한 장의 여분이 남아 있습니다만 교회력은 이미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해의 시작을 기다림으로 출발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의미의 기다림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의 모습으로 인간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신 구세주의 성탄을 기다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 날에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다시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기다림으로 살아가는 시기를 교회는 대림시기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림시기가 기다리는 시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기다림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대책도 없이 마냥 기다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기다림입니다. 곱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즐거운 일입니다. 소망스러운 일입니다.

어린 시절 기억을 한 번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입니다. 소풍날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한 번 상기해 보십시오. 잠도 오지 않고 설레는 기다림! 그 기다림은 얼마나 행복한 기다림입니까. 그런 행복으로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혼인 예식을 앞둔 신랑신부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한 번 보십시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 하고 여겨집니다. 세상의 아름다움과 기쁨과 해복이 거기에 다 있는 듯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가슴 설레며 기대에 찬 기다림….

그처럼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희망과 기대에 찬 삶으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그 기다림의 기쁨이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중에서 우리는 성탄을 준비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함께 묵상해 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구세주가 어떤 모습으로 오십니까? 돌로 잘 짜 맞춘 위엄이 넘치는 입도, 황금으로 칠한 화려한 장식도, 레이스로 꾸며진 아름다운 침대도 아닙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구세주는 화려하고 웅장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그런 모습으로 세상에 오시지 않습니다. 외양간 짚더미 속에서 첫 울음을 터뜨리십니다.
초라하고 꾸며진 것 하나 없는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나십니다. 작은 바람막이라도 되어줄 수 있을까 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짐승(소)의 밥그릇에 불과한 구유에 누워 계십니다. 세상을 구원하실 구세주가 외양간 구유에서 나십니다.

하지만 구유는 아무런 욕심 없이 자신을 비워두었기 때문에 그 안에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를 모실 수 있었습니다. 나라는 구유는 어떤 모습입니까? 나! 라는 구유에는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나라는 구유에 구세주가 누울 자리가 준비되어 있습니까? 나라는 그 구유에 세상이 가져다주는 것만 담으려 애쓰다 보면 구세주가 자리할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이 가져다주는 것들은 자존심과 교만일 수도 있습니다. 재물과 명예에 대한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는 어리석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구유에는 구세주가 오실 수가 없습니다.

빈 구유를 만들어 구세주를 맞이하는 기쁜 성탄을 준비해 봅시다.
나를 비워서 나라는 구유가 겸손함으로 꾸며질 수 있도록, 사랑으로 울타리를 만들 수 있도록, 기도로 기초를 쌓을 수 있도록, 나눔으로 문을 활짝 열 수 있도록, 나라는 구유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만든 내 삶의 작은 구유에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가 오시도록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대림시기는 기다림의 시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냥 쉬면서 때가 되면 다가오는 날을 기다리는 시기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준비하고 꾸미는 시기입니다. 내 삶의 그릇을 빈 구유로 만들어가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탄이 그냥 시간이 지나면 다가오는 하나의 축제가 아니라 내 안에 구세주가 태어나는, 내 안에 구세주를 모시는 축제를 만드는 것입니다. 무엇을 비워야 그 안에 구세주가 오실 자리를 만들어드릴 수 있을까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아들도 너희가 생각지도 않을 때에 올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늘 준비하고 있어라.” 하신 말씀 안에 충실히 살아가면서 오시는 주님을 잘 맞이하도록 대림시기를 살아가고, 기쁜 성탄을 준비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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