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팀장·라오스 <1>

▲ 7m 높이의 나무 위에서 생애 첫 다이빙.
나무 위로 올라가니 에메랄드 빛 물의 세상이었다. 햇살에 부서지는 표면이 보석을 박은 듯 반짝반짝 빛나고, 나무 아래 여유롭게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 언뜻 고요할 것 같은 전경이지만 새삼 청력이 밝아진다. 물장구 소리, 사람들 말소리 하나하나가 들리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든다. 발밑을 노려본다. 발아래 푸른 물이 검게 소용돌이친다. 시퍼런 혀를 날름거리며 비웃는 괴물과의 사투다.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쩍 하고 크게 벌린 괴물의 입속으로 불나방이 불 속으로 뛰어들듯 아픈 듯이 날았다.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억만년과도 같은 흐름이었다. 5m의 짙은 암흑 구렁텅이로 잠식하다 한 줄기 빛을 따라 마침내 구원받았다. 생애 첫 다이빙이었다.

라오스(Laos) 방비엥(Vang Vieng) 블루 라군(Blue Lagoon).
요즘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핫플레이스’다.
감상만 할 생각이었다.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 어릴 때 수영 강습을 받다가 물에 빠져 구사일생 했는데 강사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은 후로 수영과의 인연을 끊었다.
물놀이를 할 땐 구명조끼만이 나의 구세주다. 분명 나무 아래에서 구름 위에 눕듯 두리둥실 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일행들의 손에 이끌려 7m높이의 나무 위로 올라와버렸다. 구명조끼를 입었으니 뛰어내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 앞에 서 있던 한 여자 아이가 익숙한 단어를 내 뱉으며 뛰어내리기 전까진.
5글자의 진한 한국어 욕설이었다. 관광객들의 붉은 웃음소리가 푸른 공간을 가득 채워버렸다. 라오스인데, 외국인보다 한국인들이 훨씬 많다. 다 알아들은 게지.

내 차례가 다가왔다. “뛰어라! 뛰어라!” 여기는 올림픽 현장인가. 나는 왜 군중들 앞에서 경기를 앞둔 선수마냥 온몸이 찌릿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는가. 잠시 머뭇거리자 “안 뛸 거면 내려가라!”는 누군가의 외침에 ‘오케이’를 외치며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갔다. 기권이다. 한 남자가 다가와 물었다. “왜 안 뛰어 내렸어요?” 심플하게 대답해준다. “무서워서요.” 알면서 왜 물을까 싶다.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고 있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인 남고생이 “여기까지 와서 이거 안 하면 분명 후회해요. 언제 또 오겠어요. 시간 별로 없어요. 이게 마지막이에요”라며 매우 논리적인(?) 설득과 함께 손목을 잡고 이끈다. 질질 끌려가면서도 ‘무섭다’며 연신 호들갑을 떨었다.

다시 심판대에 올라섰다. '왜 또 올라왔을까' 후회할 즈음, 귓가를 때리는 한마디.
"할 수 있어요. 겁먹지 마요. 제가 보고 있어요. 안심해도 돼요.”
누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켄 블랜차드作)고 했던가. 학창시절, 범고래쇼는 동물학대 아니냐는 핑계를 대며 살포시 덮어뒀던 책의 제목이 떠올랐다. 격려는 다이빙도 하게 만든다. 학생에게 하나 배웠다. 블루라군에서 다이빙을 하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 했다. 짜릿함, 성취감, 성공적. 학생에게 고마운 마음이 백만 배 드는 순간이었다. 포기를 종용하는 말보다는 격려의 따듯한 한 마디가 더 용기를 돋우는 법이다. 더군다나 ‘나는 항상 네 편이다’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면 세상 그 무엇도 두려울 게 없으리.

여행의 진정한 즐거움은 외국의 문물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도 있지만, 이렇듯 사람들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소중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고, 내면의 성장과 함께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간다. 시공간을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어울림, 여행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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