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근 주필·한동대 특임교수

 

한 나라의 국왕이 이마를 땅에 처박아 피를 흘리면서도 세 번 절하고, 또 그렇게 세 번 하였다. 생각조차 하기 싫은 역사의 편린이 가슴을 치고 피를 끓게 하는 것은 380년 전, 남한산성의 악몽 때문일까?
높다란 단상에 거만하게 앉아 있는 홍타이지 청나라 황제 앞에서 조선의 국왕 인조가 살려달라면서 ‘삼배구고두’를 통하여 항복하고, 자신은 살아났지만 왕자를 비롯하여 수많은 이 나라 백성이, 특히 여인들이 인질로 끌려가 치욕의 삶을 살아야 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였던가? 사드문제를 갖고 지난 1여 년 동안 '삼전도의 치욕'을 재현하면서 형언할 수 없는 모욕감과 한국인의 자존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중국이 양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3不 원칙'에 '1한' 을 추가를 주창하고 나섰다.
'3불 원칙'만 하더라도 우리가 중국에 굳이 약속 할 이유가 없다. 사드를 배치하든 안 하든,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에 가입하든, 한・미・일 3국 동맹에 가입하든 안 하든 그것은 한국의 정치적 자의에 따라 결정할 우리 문제인데, 국제정치의 역학관계를 알만한 강 장관이 왜 이런 무모한 판단을 하였을까?
우리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 때부터 대중(對中)정책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 왔으며,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정권 실세들이 중국에 번질나게 드나들었지만 훈계만 듣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한국이 남북관계도 그렇지만 중국과의 문제에 있었어도 원칙대로 당당하였다면 오늘 중국이 깔보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한국에 손을 내미는 결과도 가져 왔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드문제가 터지고 지난 1년 동안 우리가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고 모든 국민이 생각하였지만 결과는 예상 외였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를 파도치던 유커들(중국 관광객)의 발길이 일시에 끊어지자 한국 사람들은 이제 끝장이라고 아우성이었다. 실제로 롯데를 비롯하여 SK 등 한국 주요 기업들이 중국에서 통관정지, 영업정지 등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2016년 7월 사드배치 결정 후 대중 무역은 마이너스였지만, 작년 11월부터 13개월간 연속 증가하여 전체 수출은 도리어 17.2% 증가하였다.
이 수출 전쟁에서 국내 IT 장비와 부품소재 업계는 승승장구, 반도체는 작년 1분기에 비해 42%나 증가하였고, 석유화학 제품은 53.9%나 증가하여 중국의 속내를 드러냈는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들은 속과 겉이 참 다른 나라라는 것이다.
외관상으로 한국에 대하여 엄청난 경제보복을 가하고 있었지만, 자신들이 아쉬운 부분에서는 한국에 손을 내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약한 상대에는 강하고, 강한 상대에게는 약한 체질이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명색이 집권당의 실세라는 사람들이 중국 가서 그들의 바짓가랑이를 붙든다고, 그들이 피해를 불문하고 한국을 특별히 예우하는 것이 아니라, 쓸개도 없는 X들이라고 웃었을 것이다.
오늘날 중국은 일본을 막대하지 못한다. 일본의 국력이 대등하다 하여서가 아니다. 2012년 9월 일본 정부가 센카쿠 열도(중국 명 다오위다오)를 국유화 하자, 중국의 반일시위는 폭동수준이었다. 일본 공장에 불을 지르고, 상품불매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고 길거리 일본인들을 폭행하였다.
이 사건 후 일본은 중국에 있는 공장을 동남아로 이전하고 년 평균 11%의 투자를 2016년에는 5%로 줄였으며, 중국의 유일한 자원무기였던 희토류 수입을 중앙아시아로 옮겼다. 중국은 닭 쫒던 개가 되었다.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한국은 자주적이고 확고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 물론 좌 편향적 사고를 가진 세력들이 정부 내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국가안보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야한다. '3불 원칙' 같은 엉터리없는 수작들은 하지 말고 말이다.
사드배치가 중국 안보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면 한국은 철수할 수도 있다. 단 북핵문제 완전 해결이라는 전제가 되어야 한다. 북한 핵 보유는 한국으로서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사의 문제인데 어떻게 사드를 포기한단 말인가!
중국은 선양에 워싱턴 등을 겨냥한 전략 핵미사일 전진기지를 배치하고 있다. 만약 전쟁이 나서 중국이 미사일을 미국에 쏜다면 알래스카나 하와이 등지의 레이더보다 한국 사드는 7분정도 빨리 탐지할 수 있다.
이것 때문에 중국은 한사코 한국 사드 철수를 부르짖고 있다. 문제는 간단하다. 중국이 단둥에 있는 북한 송유관을 잠그면 북한은 국가 자체가 올스톱 될 것이고, 그러면 북한은 항복할 수밖에 없다.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외면하면서 한국에만 책임을 돌린다는 것은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중국을 보면서, 한국이 진정으로 살아남으려면 한미동맹 이외의 대안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이것이 국제정치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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