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暎根 주필·한동대 특임교수

인터넷 동영상 유튜브에서는 지금 ‘남북평화협정’ 서명운동으로 인하여 찬반 진영끼리 길거리에서 거칠게 대립하는 현상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과연 평화협정의 본질은 무엇일까?

남북평화협정이 논의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해방정국에서 단독정부 출범을 반대하고 북한을 찾아간 김구 선생의 행보도 평화정신의 소산이었으며, 박정희 대통령의 7·4남북공동성명도, 노태우의 ‘한민족공동체발전방안’도, 김대중의 햇볕정책도 모두가 남북한 간 평화공존과 통일정부를 목적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과 합의한 것 모두가 무산된 가장 큰 원인은 북한의 일방적 조약 위반은 물론 일탈행위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전협정 이후 1만여 건이 넘는 위반행위도 모두 북한이 자행한 것이다.

과연 국가 간의 조약이나 협정은 만병통치일까? 제1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난 후 참전 31개 국가는 독일이 다시는 재기하지 못해야 유럽의 평화가 보장될 수 있다고 믿고, 1919년 6월 베르사유조약을 체결하고 가혹한 통제를 가하였다.

독일은 국토 일부를 상실하고, 감당하기 힘든 전쟁배상금으로 인해 받는 경제적 고통 때문에 연합국에 대한 적개심은 활화산이 되었다. 이 현상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정권을 장악한 나치가 베르사유조약을 폐기하자 국민들은 열광하였다.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었다.

1941년 채결된 소련과 일본의 ‘일·소중립조약’은 일본의 동남아시아 국가 진출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중동국가 진출에 대한 양국 간의 양해를 전제로 체결된 조약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독·소불가침조약’도 같은 성격을 가진 것인데, 지금 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도 지켜진 사례가 없다.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몇 가지 사례를 보았는데 국가 간의 조약이나 협정은 서로가 이익이 있거나, 아니면 비슷한 국력으로 전쟁발발 가능성이 상존할 때 이루어지는 임시방편의 조치일 뿐이다.

최근세사에서 협정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제시한 것이 베트남(월남) 종전을 이룬 ‘파리평화회담’이다. 이 회담은 남베트남(월남)과 북베트남(월맹) 간의 평화협정인데 이 회담을 주도한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이 월남전에 개입한 것은 64년, 월맹의 어뢰정 3척이 미국 제7함대의 구축함 매독스 호를 공격함으로 촉발된 통킹만 사건에서다. 미국은 이 사건을 빌미로 월맹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을 감행하면서 참전의 명분을 얻게 되었고 또 이 전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게 된다.

미국의 개입으로 월남전이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월맹과 미국의 전쟁은 강아지와 사자와의 싸움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관측과는 달리 월맹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신무장이었다. 전쟁을 하는 월남 군인과 월맹 군인의 정신이 달랐다. 월남 군인들은 직업군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반하여, 월맹 군인들은 이 전쟁을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거룩한 전쟁’이란 성전(聖戰)의식에 차 있는 병사들이었다.

월남은 총구를 맞대고 있는 전방만을 전선으로 여겼지만, 월맹은 그 전선을 월남의 전 국토로 확산하였고 그 심장부를 사이공에 두었다. 이것이 공산당의 탁월한 전략인 ‘통일전선전술’이다.

전쟁하는 상대국가의 정신력을 무너뜨리는 심리전이었다. 수많은 월남의 민주세력·애국단체·민족주의 세력과 정당·사회단체·종교계의 성직자 등을 모두 월맹 우군으로 형성하여 반정부 투쟁에 앞장서게 하였다.

특히 사이공대학의 학생회가 중심이 되어 시작한 ‘군사훈련 거부운동’을 전국 대학에 확산하는데 성공함으로 반정부 투쟁에 대학생들과 청년층을 흡수한 대성과를 이루었다. 이 운동이 성공한 것은 학생회 총회장 ‘한 땀 만’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는데, 월남 패망 후 드러난 사실은 그가 월맹의 현역 육군 중위였다는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결정타를 입힌 것이 미국에서 벌어진 대학생들의 ‘반전데모’였다. 미국 청년이 저 부패한 썩은 월남을 위해 왜 목숨을 바쳐야 하느냐다. 미국 정부도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게 되자, 월맹과의 종전을 위한 평화협정을 도출한 것이 “파리평화회담‘이다. 12개 국가들이 보증인 자격으로 참여한 가운데 샴페인을 터뜨리면서 조인식을 하였다.

이 협정의 주요 내용은 월남과 월맹은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전쟁발발 시 미국은 즉시 월남 지원을 한다는 약정이었다. 하지만 한 번 떠난 미국이 왜 이 수렁에 빠지겠나.

미국이 철군하면서 모든 전투 장비를 그대로 두고 떠났다. 월남은 군사력이 세계 5위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구식 장총 하나로 전쟁하는 월맹군의 사기 앞에는 무용지물이었다. 한국의 국방력이 북한보다 몇 십 배 우수하다 하더라도 핵폭탄 앞에 그것은 하나의 장식품에 불과하다.

평화협정으로 미국이 철군하자 월맹은 노도같이 밀고 들어왔다. 그 날이 1975년 4월 30일, 자유월남은 이 지구상에 사라졌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환호하던 반정부 세력들, 월맹을 사모하고 맹신하던 세력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두말 할 것 없이 ‘정치교화소’로 직행하였다. “왜 그들을 죽이느냐?” 는 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저(월남) 정부에서 반정부 투쟁을 하는 족속들은 이(월맹) 정부에서도 반정부 투쟁을 할 수 있는 세력들이기 때문이다”라고 답변하였다는 것이다.

남북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평화가 도래하는데 미국이 한국에 주둔할 이유가 없다. 미군이 떠나면 월남 패망의 역사는 오늘의 우리들을 다시 뒤돌아보게 하는 교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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