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실바노) 계산성당 주임신부

우리 사회에는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것 또한 고스란히 우리들의 몫인 듯하다.

우리나라 정치상황과는 다르게 사회가 떠들썩하고, 군중들의 기대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가 누구인가?'하는 것이다. '그가 기다리던 구세주가 맞나?'하는 것이다.

구세주 오심을 준비하던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서 알아보게 했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당신이십니까?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예수님의 대답은 ‘맞다, 아니다’가 아니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하신다. 듣고 본 것이 어떤 것인가?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보라는 것이다.
지식으로 아는 정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리스도가, 구세주가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 삶의 모습이 변한다는 것이다.

일어나는 상황들, 소경, 절름발이, 나병환자, 귀머거리, 가난한 사람들이 누구인가? 소외되고, 상처받고, 아픔이 있고, 사랑이 필요하고, 위로가 있어야 하고, 용서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그리스도, 구세주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라는 것이다. (위로와 희망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시는 분이 구세주, 주님이다.)

요즘 일련의 현상들을 보면서 대한민국이 얼마나 병들어 있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육신이 병든 것보다 얼마나 더 깊이 죽음의 세계에 빠져 있는가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병든 것은 훨씬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바라보게 된다.

세례자 요한은 구세주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잘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 요한을 두고 예수님은 “예언자보다 중요한 인물이다” 하신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가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하신다.

요한의 사명은 구세주를 맞이하기 위해 삶의 모든 것을 바르게 세우라는 것이다. 외형을 고치려고 애쓰는 것보다 마음을 바르게 고치라는 것이다. 마음이 병들어 있다면 육신이 멀쩡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삶의 모습을 바르게 만드는 것이다.

예수님은 초라한 마구간의 구유에 나실 것이다. 구유는 밥그릇이다.
그릇에 많은 것이 담겨져 있으면 새로운 것을 담을 수가 없다. 예수님이 나실 자리가 없다. 빈 구유를 만들어야할 것이다.

겸손함으로, 사랑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기도로 기초를 쌓고 나눔으로 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곳에 예수께서 자리하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겉으로만 꾸며지는 삶의 모습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가장 정성스럽게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도록 살아야할 삶에 부족함이 없도록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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