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석호 마더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현재 우리사회는 노인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노인이 점차 많아지기도 하지만 예전의 전통적 가족구조에 변화가 오면서 노후준비를 하여야 하는 문제도 대두된다. 그러나 노년이란 사회적 측면에서 문제이기는 하지만 각자의 인생에서는 자신의 전체를 실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life)은 언제나 똑같은 것이라도 '사춘기' 때와 '갱년기' 때가 다르듯이 각 주기(stage)는 그 때마다 다른 숙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춘기는 사회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며 갱년기는 '자신'으로 다가가는 것이 두려운 시기가 될 수 있다.

생애주기(life cycle)를 둘로 나눌 때 인생전반기는 생물학적, 사회적 숙제가 있고 인생후반기는 문화적, 영적 숙제가 문제가 된다고 융 심리학에서는 보고 있다. 젊어서는 아이를 낳고 자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자연적 목표가 있고 그래서 돈을 벌고 사회적 위치에서 매진하는 것이다. 이 목표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새로운 목표가 나타날 수 있다.

한 시기에서 다음 시기로 넘어갈 때가 중요할 것 같은데 넘어가 봐야 사실 그 전 단계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중학교를 지내보면서 초등학교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이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서 자신이 한 생활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며 그래서 그렇게 지냈구나 하고 그 생활을 발견하기도 하지 않나.

융은 '전반기인생은 신체적 아기를 탄생시키고 후반기인생은 정신적 아기를 탄생시키는 시기'라고 보는데, '한번은 생존을 위하여 태어나고, 또 한 번은 생활하기 위해 태어난다'라고 루소가 말한 것과 비교되는 면이 있다. 우리는 단지 생물학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만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융은 후반기인생이 진정한 개성화로 나아가는 시기라고 보는데 물론 전반기에도 전체를 위한 바탕이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기에 전체에 대한 이해가 암암리 없는 것이 아니겠지만 각 시기에 활성화되는 '숙제'라는 것이 다른 것이므로 초점이 달리 생겨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춘기는 사회로의 진출에 두려움을 갖게 되고 그것을 잘 이행하는 것에서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다. 갱년기는 자신의 내면세계로의 적응이 중요성을 갖게 된다. 사실 사회적 진출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았는지 길을 잃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의미는 자신의 태어난 성향 등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외적 일방적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외적 집착(attachment) 만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나이 드신 분에게 자주 말씀 드리는 것이지만 젊어서는 돈 벌고 사회생활 열심히 하는 것이 숙제이지만 지금 숙제는 다르다. 늙어가는 것을 잘 받아들여 아픈 것을 잘 보살펴주고 잘 늙어가는 것이 숙제라고 말씀 드리는 것이다. 이것을 잘 하면 이제껏 열심히 아이들 키우고 산 보람도 지킬 수 있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이 숙제를 팽개치고 끝은 잘 마무리하지 않으면 이제껏 한 노력들이 무색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안 아프고 편한 것만을 선호하여 아픈 것을 의미 없게 생각하는 수가 많다. 하지만 병이 찾아온다는 것을 계속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병이라는 것은 어쩌면 자아를 초월한 초개인적인 자기의 중심(self)에서 오는 어떤 가능성의 메시지일 수 있다는 것이 융의 생각이다. '자기'와의 만남이 '자아'에게는 패배감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은 것이지만 그래도 병을 앓고 나서 우리는 마음에서는 더 넓은 자유를 체험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 아기의 탄생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그 정신적 아기라는 것은 하지만 자신의 생활과 다른 곳에 있는 어떤 영혼 공간에 있는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자기와 자아란 다른 것이 아니다.

생활의 발견이란 사실 실컷 생활하면서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인데도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내'가 보내는 어떤 메시지의 눈뜸일 뿐인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런 메시지는 자신에게 다가가는 두려움만 넘어서면 내가 눈뜨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냥 있는 대로의 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퀴블러 로스라는 죽음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한 임상의학자는 인생수업(life lessons)이라는 책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거쳐 갔지만 진정으로 살지는 못했다'는 말을 한다. '그들은 자신의 미완성의 삶을 가슴 속에 숨겨두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생활의 발견이란 나에게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일이고 노후 준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연금과 함께 그렇게 드러나는 것에 대한 이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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