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태 편집국장

우리나라 사망자의 화장(火葬) 비율은 1994년에는 20%대였는데, 25년이 지난 지금 75%에 달했다는 것은 대단한 변화다. 10년 전 우리나라의 분묘 수는 2천 65만 기며 면적은 3억 9백 70만 평으로 추정되었다. 국토의 1%가 넘는다.

묘지 1기당 면적은 15평으로 국민 1인당 주거 공간의 3.5배에 이른다. 2001년부터 개인 묘지가 9평 이내로 제한됐지만 묘지 수는 해마다 17만 기씩 늘어나고 있다. 넓이로 따지자면 8제곱킬로미터 정도로 서울 여의도와 맞먹는다. 그러나 주인 없는 분묘도 8백만 기를 넘는다.

화장비율은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일본 99%, 태국 90% 등과 비교한다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원래 장례 풍습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가장 보수적인 부분에 해당한다. 현묘(玄妙)하고 알기 어렵기 때문에 쉽게 변하기 어려운 것이다.

생(生)에서 시작하여 노(老)와 병(病)을 거쳐서, 사(死)에 도달하는 과정에 대한 이치를 깨닫는 일이 철학이라고 한다면, 사(死)에서 다시 거슬러 올라가 생(生)으로 연결되는 이치를 깨닫는 일은 종교에 해당한다. 이렇게 보면 죽음이라는 대목은 철학에서 종교로 넘어가는 연결 과정이자 전환점이기도 하다.

장례 풍습이 변했다는 것은 한국인의 사생관(死生觀)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땅에 묻는 매장(埋葬)과 불에 태우는 화장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 차이를 다시 좁혀보면 뼈[骨]를 땅에 묻느냐 불에 태우느냐의 차이다.
매장에서는 혼(魂)과 백(魄)의 사생관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죽음을 ‘혼백(魂魄)의 해체’라고 보았던 것이다.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내려간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백이다. 땅으로 내려간 백은 망자(亡者)의 뼈에 붙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유골을 소중히 다뤘고, 이 유골을 명당(明堂)에다가 묻으면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고 여겼다. 뼈에 붙어 있는 백을 통해서 조상과 후손이 서로 교신한다고 믿었다.

그 교신 수단은 꿈이다. 망자가 명당에 들어가면 가족이나 후손들 꿈에 망자가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반대로 물이 나는 곳이나 좋지 않은 곳에 묻히면 걱정스런 모습이나 불길한 상징으로 나타나는 수가 많다. 대체적으로 땅에 묻고 나서 10일 이내에 직계 가족들의 꿈에 나타난다는 게 일반적이다.

좋은 명당에 묻히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 묻히면 후손들의 삶이 복잡해진다고 보는 것이 풍수가들의 견해다. 그럴 바에는 화장이 안전하다. 왜냐하면 화장을 하면 무해무득(無害無得)이 된다. 해도 없고 득도 없는 상태가 무해무득이다. 조상과 후손의 통신수단인 뼈를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의 묘지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묘지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기 때문이다. 〈파리의 묘지 안내〉라는 책은 관광객에게 인기다. 프랑스는 1776년 국왕이 묘지 정비에 관한 선언을 발표했다. 국민의 위생을 보호하고 묘지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조치였다.

아울러 묘지에 조각물들을 설치하도록 적극 권장했다. 이 선언이 조경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훗날 공원묘지라는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19세기 초에 파리의 3대 묘지로 불리는 페르 라셰즈, 몽파르나스, 몽마트르 묘지다.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과 작가 오스카 와일드, 록 뮤지션 짐 모리슨, 무용가 이시도라 덩컨 등이 묻힌 페르 라셰즈 묘지는 미국과 영국, 북유럽 묘지의 모델이 됐다.

유명인들이 즐겨 묻히는 페르 라셰즈에는 총 10만여 개의 묘소에 50만 명이 잠들어 있다. 층층이 묻는 가족묘인 '카보'가 많아 분묘 수와 매장자 수가 다르다. 프랑스 남부로 내려가면 관을 땅 속에 묻지 않고, 벽장에 꽂듯 차곡차곡 쌓는 '앙프'라는 형태가 널리 퍼져 있다. 프랑스에서는 '사후에도 모든 시민들은 평등하다'는 원칙이 철저히 지켜진다.

물론 개인 묘지는 없다. 죽은 자에겐 빈부귀천을 불문하고 수평적으로 똑같은 크기(1.2평)가 주어진다. 그러나 수직적으로는 각자 개성과 경제적 능력에 따라 묘지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허용된다. 이런 예술적인 분위기와 호젓함에 끌려 많은 관광객이 묘지를 찾는다. 시민들은 죽음 가까이서 사색에 잠겨 자신을 되돌아보며 삶을 풍성하게 가꾼다.

반면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우리나라 야산의 묘지가 산 전체의 반쯤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보인다. 묘지 주변까지 잔디가 깔려 있고 봉분 주위엔 석물들이 즐비하다. 왕조시대의 왕릉 같아 보인다. 사람들 눈에 쉽게 띄는 곳에 요지에 잡은 이렇게 큰 묘들이 전국에 얼마나 많은가?

대다수의 묘가 주인이 없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개인 묘지는 70% 이상이 불법 조성돼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는 사회지도층이나 부유층이 보란 듯 묘를 크게 쓰려고 몰두하는 데 있다. 게다가 명당만 찾다보니 주택가 가까운 곳까지 가리지 않고 묘를 쓴다. 효와 예를 중시하는 민족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인구가 작던 왕조시대와 현대는 다르다.

돈과 힘을 과시하려고 묏자리를 크게 쓰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진정 효를 중시한다면 묏자리를 크게 쓰고 명절에만 성묘할 게 아니다. 원하면 언제든 가족이 모여 조상을 기릴 수 있는 집 근처 납골당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돈을 많이 들여 넓은 땅을 차지해 호화롭게 꾸미는 것만이 조상에게 효도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계실 때 잘 모시는 것이다. 바람직한 장례문화, 이제는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지도층들의 솔선수범과 함께 전 국민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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