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에 성공한 스페인 빌바오, 포항의 롤모델 충분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 문화를 통한 경제적 가치 창출
포항의 정체성 위한 포항학(浦項學) 정립 필요


프랑스 파리에 ‘에펠탑’이 있다면 스페인 바로셀로나에는 ‘성가족성당’이 있고 빌바오에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다. 이 유명한 도시의 대표적 건축물들과 문화, 환경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선진 도시의 친인간적인 문화와 아름다운 환경을 볼 때, 그 결과적 성공에 숨겨진 수많은 노력과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고민들을 잘 보지 못한다. 이렇게 화려하고 성공적 결과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내가 사는 지역은 어떻게 고민하고 발전시켜야 할 지 많은 점을 배우게 된다.

오랫동안 도시의 미래발전 전략에 있어서 포항의 롤 모델은 스페인의 빌바오였다.

도시재생에 성공한 빌바오는 전세계 낙후된 도시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포항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스페인 동북부 바스크 주의 수도, 빌바오는 20세기 초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항구 공업도시였다.
그러나 철강자원의 고갈과 1970년 이후 아시아 신흥 공업국들의 부상과 조선, 철강 산업이 아시아로 이전되면서 80년대 도시 실업률이 24%까지 도달했고 그간의 산업 활동으로 북대서양으로 흐르는 네르비온 강과 주변은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황폐해졌다.

마약범죄는 증가했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83년, 유례없는 대홍수가 발생하여 도시의 2층 건물 높이까지 침수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빌바오의 도시재생이 시작된 것이다.

빌바오는 1989년 도시재생을 위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많은 실행과 노력을 기울였다.
네르비온 강을 중심으로 문화, 경제 활동이 전개되도록 하고 친환경도시를 만들기 위해 수질개선과 강변정비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도시의 이미지를 위해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했다.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빌바오에는 도시의 구석구석에 많은 옛 건물들이 역사를 자랑하고 서 있다.
미술관은 도시재생의 정점이지 전부가 아니었다.
도시전체에 공공디자인개념을 도입했고 도로도 대중교통과 자전거도로, 보도위주로 개선하였으며 오염이 심해서 죽음의 강이 된 네르비온 강을 살리기 위해 15년간 구겐하임 미술관 건설비의 6배에 해당되는 8억 유로를 투자해서 시민을 위한, 시민이 즐기는 문화와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빌바오는 시민들이 아끼고 사랑하고 즐기는 도시이자 자부심의 대상이 되었다.

1997년 10월에 개관한 구겐하임 미술관은 네르비온 강에 정박한 선박의 형상으로 비행기의 외장재인 티타늄 3만3천장으로 외부를 장식했다.
입체파의 피카소가 형상을 분해해서 면으로 재구성 한 것처럼 프랑크 게리가 창의적으로 만든 구겐하임 미술관은 흐린 날에는 은빛으로, 맑은 날에는 금빛으로 변하여 신비스런 색조를 연출하였으며 20세기 인류 최고의 건축물로 극찬을 받기도 했다. 개관 5년 만에 건설비, 세금을 포함한 모든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호텔 수가 10배, 새로운 일자리가 4천여 개가 생겼다. 문화를 통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유럽의 수많은 문화관광객들을 상당수 빌바오로 유입시킨 이들의 성과는 환경과 문화 전체를 함께 진행시킨 결과이며 지금도 전 세계에서 이 ‘빌바오 효과’를 바라보며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려고 200개가 넘는 도시가 줄 서 있다고 한다.

철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예술품을 전시하고 관광객을 생산하는 철 미술관을 디자인하고 완성시킨 ‘프랭크 게리’가 처음 빌바오를 방문했을 때, 빌바오 시민들의 간절한 눈빛을 보고 감동해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는 말이 있다. ‘루이비통 미술관’ 이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보듯이 파격적이고 대단히 창의적인 건축가로 유명한 ‘프랭크 게리’는 ‘감동’을 하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서양 사람이라 서구적인 감성만 있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한 번은 프랭크 게리가 서울에 휴가를 온 적이 있다.
아들 내외와 함께 서울의 종묘를 방문한 것이다. 거기에서 며느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종묘’는 아랫 마당에서 보는 것과 한 칸 위로 올라가 윗 마당에서 보는 것이 다르다.
그리고 하나의 건축물이 이렇게 ‘고요’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건축물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제외하고 여기 ‘종묘’ 밖에 없다.
정작으로 우리는 성공적이고 멋진 결과물로서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보다도 ‘프랭크 게리’ 의 건축에 대한 철학적 감성을 근본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항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면 도시가 성공할 수 있을까.
얼마 전에 포항에서는 1,500억짜리 에펠탑을 만들자고 난리친 적이 있다.
에펠탑은 몽마르트 언덕과 더불어 프랑스 파리의 명소로 꼽히는 데는 그 이유가 있다.
파리는 도시가 높낮이가 별로 차이가 없이 평평한 지형인데 그 중에 높은 곳이 해발100m 정도의 몽마르트 언덕이고 가장 높은 곳이 방사형 도로의 도시 중심에 있는 에펠탑이다.
그곳에 올라가면 아름다운 파리가 다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 세계 문화의 중심도시이자 많은 예술가들이 수천 년 동안 창작한 예술품들을 엄청나게 간직하고 있고 수준 높은 문화정책과 더불어 전 세계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도시이다.
이곳에 에펠탑이 있기 때문에 유명한 것이다.
포항은 탑산이나 모갈산처럼 도심을 끼고 있는 전망 좋은 산들이 많다. 그런데 에펠탑이 포항에 필요한 이유가 있는가. 있는 산에 조금만 꾸며도 된다.

세계화로 국가 간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국가’보다는 ‘지방’이 경제, 문화의 실천적 주체로 떠오르고 지방 분권화가 가속되고 있는 이 시대에 빌바오는 빛바랜 산업도시가 도시재생에 성공함으로써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사람들이 관광을 갈 때에는 세계적인 국가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도시를 방문한다.
도시를 바꾼 예술, 예술이 된 도시 빌바오가 성공적 신화가 되기까지는 총체적인 재생전략이 빛을 발했고 무엇보다 기본을 잘 지킨 원인이 있다.

하나의 문화 산업은 갑자기 하늘에서 천재의 머리에 뚝 떨어져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몇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1, history에서
2, story가 나오고
3, storytelling 작업을 통하여
4, 하나의 문화 contents 가 실행되고
5, 수시 점검을 통한 지속 발전이 가능한 문화 산업이 형성되고 자리를 잡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지역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시민이 참여하고 아끼고 즐기는 문화산업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외국의 성공사례를 무작정 도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오히려 국내의 성공 사례에서 배울 곳도 많다.

얼마 전에 여수, 순천을 갔다.
순천 드라마 촬영장과 낙안읍성, 여수엑스포공원과 KTX역, 문화가 깃든 산마을, 케이블카를 둘러 봤다. 그리고 여수 밤바다에서 펼쳐지는 낭만포차의 유혹을 뒤로 하고 이순신 대교를 지나왔다.
순천드라마 촬영장은 일제시대에서 50년대까지, 60년대, 70년대의 마을 모습들이 재현되어 우리의 역사이자 삶이 그대로 녹아나 있었고 낙안읍성은 동서남북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가 포근하게 성(城)과 마을을 감싸고 조선시대 우리의 옛 삶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포항과 비교가 되었다. 포항은 오랜 역사와 기억과 추억이 있는 포항역(驛)을 한순간에 갈아 뭉개고 그 위로 도로를 냈다.
송도 솔숲은 수십억을 들여 멋진(?) 길을 만들었다. 자연훼손도 훼손이지만 송도 솔숲을 드나들면서 소풍 가고 산책하던 공간에 갑자기 이상한 대리석 길을 하나 옮겨 놓고 우리의 기억과 추억을 지워 버렸다. 솔숲 길은 솔숲 길답게 만들면 어떨까.

‘지방’은 성공도 하지만 소멸도 한다.
전시행정에 정신없이 끌려 다니기보다 포항의 정체성을 더 파악하고 일을 해야 한다.
포항학(浦項學)의 정립이 필요하고 포항시사(市史)가 보강되어야 하며 동마다의 역사와 전설들을 구체적으로 조사해서 동네마다의 동사(洞史)가 사진과 동영상으로, 애니메이션으로 재미있고 섬세하게 만들어 져야한다.
이런 history의 기본적인 내용들에 대한 아카이브가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어야 그 반석 위에 재미있고 다양한 story가 나오고 지역을 넘어서 멀리까지 감동이 전달되는 문화 상품이 창출되는 것이다.

여수, 순천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관광버스 안내자의 한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광양이 포스코에 빨대를 꽂아 안주하는 동안 여수는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노력을 해왔고 지금은 전남 제1의 문화 관광도시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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