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실바노)계산성당 주임신부

우리는 참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미사를 드리다가 이렇게 저절로 기도할 수 있을 것 같은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경험해보지 못하고서는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듣기가 어렵다.
(한국에 제가 있었던 성당의 교우들… 이런 상황을 얘기하면, 미국인데… 설마 한다.)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더 소중한 마음들로 살아야 하는가를 다짐해보면 좋겠다.
자랄 때는 지극히 당연히 교회는 거룩하다고 알고 믿어왔다.
그런데 교회론을 배울 때 교회는 거룩하지만 교회 안에는 선한 사람과 선하지 못한 사람이 함께 있다고 배우고서는 한동안 혼란스러웠다.(이해가 안 되었다.)
이 무슨 소리냐? 교회가 선하지 못하다니….
나중에 정리해보니까 이랬다. 교회가 선하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선하시다는 것이다. 교회가 선하지 못하다는 것은… 그것은 내가 결코 선한 사람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허점투성이고, 많은 실수를 하고, 후회할 일과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깨끗해지고 싶고, 선해지고 싶고, 남들에게 좋은 표양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악함 위에 선함을 추구하는 모습, 부족하지만 완덕에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 이것이 선한 교회, 선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래서 교회는 선하기도 하고, 그렇지도 못하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씩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합니다.
신부님! 그 사람 성당 못나오게 하면 안 됩니까? 하면…, 왜? 라고 묻습니다.
그 사람 보기 싫어서 성당 안 나갈래요… 하면, 그래요? 라고 합니다.
성당 다니는 사람이 왜 그런데요?… 하면, 글쎄요? 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의롭고, 정직하고, 진실한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는가?
사실이 그렇다면 그는 그런 표현도 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니지만 당신은 그러해야 한다는 논리만 적용되는 것일 뿐이다.
율법학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일어나는 미묘한 갈등, 그 힘겨루기를 살짝 들여다보자!
* 율법학자들!
예수그리스도께, 왜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는가? (그 표현 안에는…) 다른 이들을 죄인 취급한다. 아예 상종을 하지 않고, 배타적으로 이기적으로 살아간다. 그 안에는 스스로 의인이라는 교만과 위선에 빠져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진실로 바라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 사랑이다.
하느님의 법은 사랑이다. 율법에 의한 외적인 준수가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는 믿음과 사랑임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계신다.
동전은 양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르지만 같은 동전이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 악하지만, 선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예수님과 함께 선하게 될 수 있다는 기쁨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이웃의 부족함도 사랑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절대로 남을 탓하지 않는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의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아니 스스로 의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을 평가도 하고, 단죄도 하고, 심판도 하고, 나와 함께 사랑의 울타리 안에 머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선을 긋는다.
교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나? 그리고 그 교회의 구성원인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완벽한 사람, 죄지을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모두가 하느님 사랑을 체험해야할 동반자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마태오를 부르시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꼭 바라보아야 할 모습은 뭔가? 그것은 한없는 사랑이다. (세리… 신분상…) (동전) 뒤집어보면 달라 보이지만 같은 실체이다.
우리는 선함 그 자체로 살아가기에는 나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우리는 선함에로 초대받은 사람들이다. 내가 선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선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교회를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바리사이처럼 저 멀리서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훈수만 두는 것도 아니라) 서로를 애절한 사랑으로 안아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시는 그런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를 받아줄 때 우리도 선한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오늘을 시작으로 우리는 많은 (옆에, 앞에, 뒤에…) 빈자리를 먼저 사랑으로 채우자. 내가 사랑하는 그 모습을 보고 빈자리를 채우는 사람을 만나자. 하나하나 하느님 사랑 받아야할 소중한 사람임을 기억하자.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하신 그 사랑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나누자.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