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태 편집국장

‘옛 글 가운데 참된 보물만 모아둔 책’이라는 의미를 가진 고문진보(古文眞寶)는 명나라 때 민간에 많이 보급되었으나 청나라 때 종적을 감췄다고 하나 한국과 일본에서는 계속 많이 읽혔다고 전해진다. 중국의 좋은 시와 좋은 문장을 송나라 때 황견(黃堅)이 엮은 책으로 전집에서는 명시를, 후집에서는 명문장을 담고 있는 당송시대의 대문호들이 쓴 글이 많다. 그중에 당송팔대가 유종원의 '종수곽탁타전'은 우리 모두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곽탁타는 처음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곱사등이여서 혹이 솟아나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니, 낙타와 비슷하였다. 따라서 마을 사람들이 그를 낙타라고 불렀는데, 그는 그 소리를 듣고, "참 좋다, 나에게 꼭 알맞은 이름이구나!"하며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스스로 낙타라 불렀다.

낙타가 사는 마을 이름은 풍악이니, 그곳은 장안의 서쪽이다. 낙타는 나무 심는 것이 본업이니, 장안의 권세 높은 양반들과 부자들 중에 나무를 완성하거나 과일을 사려는 사람은 모두 앞 다투어 그를 맞아들여 돌보게 하였다. 탁타가 나무를 가꾸거나 혹은 옮겨 심으면, 죽는 일이 없으며 언제나 잎이 무성하고, 다른 나무보다 일찍 열매를 맺고 또 많았다. 다른 사람이 가만히 엿보아 배워서 그대로 해보곤 했지만, 탁타가 가꾸는 것과는 같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물으니, 탁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나무를 오래 살게 하고 잘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가 지닌 본성을 거스르지 않고, 그의 본성을 다하도록 돌보아줄 뿐입니다. 나무의 본성이란 뿌리는 바르게 뻗으려 하고, 북돋움은 고르길 바라고, 그 흙은 옛것이고 싶어 하고, 뿌리 사이를 꼭꼭 다져 주기를 바랍니다. 이런 다음에는 건드리지 않고 걱정하지 말며 더 이상 돌아보지 않고 내버려두어, 처음 심을 때는 자식과 같으나 심은 다음에는 아주 내버린 것처럼 하면, 나무의 본성이 온전히 보존되어 그 본성에 따라 잘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무의 성장을 해치지 않을 뿐이지, 나무를 크고 무성하게 하는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며, 열매를 맺는 것을 억눌러 손상시키지 않을 뿐이지, 일찍 맺게 하고 많이 맺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략) 나는 그같이 하지 않을 뿐이니, 내게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물었던 사람이 말하였다.

"그대의 나무 가꾸는 법을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 이용하면 좋지 않을까요?" 탁타가 대답하였다. (중략) "나는 나무 가꾸는 법만 알 뿐이요, 다스리는 일은 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고향에 있으면서 번거롭게 명을 내리기를 좋아하는 수령을 보았습니다. 그는 백성을 가엽게 여겼으나 결과적으로는 화가 되었습니다. (중략) 나무 가꾸는 법을 물었다가 사람 돌보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후세에 전하여, 관리들이 지켜야 할 계칙으로 삼고자 합니다."

유종원의 명문장에서 보듯이 나무의 생장을 제대로 돕는 것은 타고난 나무의 본성을 그르치지 않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승의 역할도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타고난 재능을 제대로 끄집어내 북돋워주며, 학생들이 말에 오르기 쉽게 바치는 노둣돌의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다.

자녀를 둔 부모도 매한가지다. 아이의 개성을 살려 자연스럽게 커 가도록 도와주면 될 일을 지나친 과잉보호로 학교 생활에서나 또래들 간의 문화에서 소외시켜 오히려 잘못되게 만드는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법 또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자신을 다스리는 법이나 타인을 다스리는 법이 다르지 않듯이, 인간의 타고난 선한 본성을 북돋워 국민이 스스로 지도자를 따르도록 하는 정치를 하면 되는 것이다.

인위적인 힘에 의한 정치보다 세상의 이치로 교화하는 자연스런 인성에 의해 다스릴 때 국민을 위한 나라는 저절로 이루어진다면 너무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서 물과 같은 심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물은 누구의 말에도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사람의 말들을 들으면서 흘러간다. 지도자는 물과 같이 흐르는 인간의 심성을 빨리 귀담아 들을 수 있어야 유능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도자는 거짓과 이기심이 있으면 국민과의 신의는 성립될 수 없다. 그리고 국민을 위해 진심으로 봉사하는 열정과 책임감, 국정에 대한 균형 있는 판단이 있어야 한다.

국민들 또한 자신의 품위를 지키고 나라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열정을 가지고 각자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를 이끌어 온 지도자들은 권력을 정당하게 얻지 않고 무력으로 빼앗았으니 도덕과 양심을 국민에게 호소할 수 없었고, 엄격한 제도나 가혹한 법률로써 국민을 다스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정원사 곽탁타와 같이 국민의 본성을 다독여 줄 수 있는 존경받는 지도자가 나와야 할 때라고 본다. 아울러 모든 사람들이 정원사 곽탁타 이야기를 통해 어떤 일을 대함에, 너무 조급해하거나, 지나치게 넘치지 않는 세상사는 지혜를 배운다면 삶은 보다 윤택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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