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산수유 노란 꽃망울마다 봄이 움텄다. 이제 막 동안거를 끝낸 섬안이 들꽃 잔치를 열었다. 양지바른 길섶마다 별꽃, 봄까치꽃, 흰제비꽃들이 다투어 피어났다. 아침 강 위론 물안개가 수묵화처럼 번졌고 저녁엔 푸른 이내가 깔렸다. 쑥 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따라 겨우내 자란 보리순들이 들녘을 출렁거렸다. 북쪽으로 떠나지 못한 댕기머리해오라기 몇 마리 선머슴아처럼 냇가를 어슬렁거리는 것도 이때쯤이다.
섬안의 원래 이름은 도내동이었다. 사람들은 개흙으로 형성된 형산강 하류 섬들을 개척하여 농지와 염전으로 개간하면서 이곳에 집단주거지를 조성했다. 갈대만 무성했던 포항의 다섯 개 섬 중 상도와 대도를 합쳐 행정구역상 도내동으로 개칭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섬안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자야네가 섬안으로 들어온 건 그해 보리누름 때였다. 달구지에 가재도구 몇 가지 싣고 섭이네가 떠난 빈 집으로 이사온 것이었다. 홀연히 찾아든 이방인을 반기듯 마을 앞 때죽나무가 흰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던 날이었다. 이발사라는 자야아버지는 작고 마른 체구에 등이 몹시 굽은 꼽추였다. 아홉 살 또래 자야는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로 달구지 위에서 가쁘게 기침을 해댔다.
부지깽이도 바빠진다는 모내기 때는 누렁이들 코에 단내가 났다. 형산강 보문이 열리기 전,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남녀노소 불문하고 부역을 나갔다. 수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한 방울의 물도 흘려보내지 않으려 논 두둑을 치고 다졌다. 섬 안의 봄은 연자매 가는 당나귀처럼 눈 코 뜰 새 없이 지나갔다.
머리 자르려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자야네를 찾아 왔다. 그때마다 먹을거리며 알곡을 들고 왔다. 나도 자야네 뒤 안, 사과궤짝에 앉아 머리를 자르곤 했다. 사각사각 자야아버지의 가위질은 갈대숲 위로 지나가는 하늬바람 같았다. 가쁜 숨을 들이쉬며 뒷마루에 나앉은 자야와 가끔씩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별꽃처럼 눈이 맑은 아이였다.
섬안은 형산강이 있어 아름다웠다. 갈대숲속엔 들꿩이며 노랑턱멧새, 곤줄박이들이 날아들었고 물억새와 달뿌리, 모새달도 서로 키를 재며 자랐다. 섬안 뜰이 기지개를 켜면 숭어가 돌아왔다. 은비늘을 번쩍이며 무리지어 유영하는 숭어를 잡으러 새벽강가에는 초망을 던지는 이들로 북적거렸다. 팔뚝만한 숭어는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 사람들의 기운을 돋워주는 보약이었다.
모를 낸 논에는 다슬기 미꾸라지, 우렁이가 자랐다. 부드러운 호박잎을 찢어 넣은 다슬기 탕이 여름 밥상에 자주 올랐다. 겨우내 텅 비었던 고방에 소소한 먹을거리가 쌓이면 마른버짐 핀 아이들의 얼굴에도 제법 기름기가 돌았다. 어지러워 방안에만 누워있던 자야도 마당으로 나왔다. 강으로 내달리던 아이들이 자야네 마당으로 몰려들었다. 근심 가득하던 자야아버지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마른 쑥으로 모깃불을 지피고 멍석을 깔고 둘러앉으면, 밤하늘에서 별들이 보석처럼 쏟아져 내렸다.
마파람에 혀를 빼물고 자란 곡식이 하늬바람에 모질어졌다. 들판에는 참새들이 허수아비를 따라 돌고 강가에는 갈대꽃이 흩날렸다. 그즈음 자야의 기침소리가 자주 골목을 넘어왔다. 나는 다시 굳게 닫혀버린 자야네 방문 앞을 서성거렸다. 갈바람이 불면 어머니는 들깨를 갈아 넣고 토란국을 끓였다. 그 구수한 냄새가 집안가득 퍼질 때쯤 대문 앞 회나무에도 가을빛이 완연했다.
추수 끝난 들판이 방금 이발을 한 것처럼 단정해졌다. 서리가 내린 갈대밭엔 서걱대던 풀벌레 소리도 사라졌다. 어머니가 아궁이 깊숙이 묻어둔 고구마와 감자가 익기를 기다리며 풍구를 돌렸다. 갑자기 쌀쌀해진 가을 끝자락 아침, 자야네 굴뚝에 연기가 오르지 않았다. 아픈 자야를 걱정하며 대문을 나서던 어머니가 자야아버지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꺼억! 꺼억! 담을 넘어오던 그 소리는 섬 안 뜰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건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죽음이었다.
겨울은 빚쟁이 독촉하듯 찾아왔다. 살을 에는 삭풍에 강은 두꺼운 얼음이불을 덮었다. 빙판에 갇힌 강변의 배위로 까치가 떼 지어 날아다녔다. 자야가 떠난 마당엔 진눈깨비가 날렸다. 동네사람들은 혼자가 된 자야아버지를 위해 보리로 엿기름을 짜고, 밀로 누룩을 만들었다. 몇 십 년 만이라는 큰 눈이 며칠을 두고 내렸다. 사람들은 꼼짝없이 집안에 갇혔다. 눈이 그치고 동네사람들이 이발소에 도착했을 때 자야아버지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섬안이었다. 섬안에서 태어났고 섬안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섬안은 내가 태어난 자궁이었고 형산강은 나의 탯줄이었다. 내 유년의 시간들은 섬안뜰 어디에서 조금씩 내가 되고 있을까? 아카시아 꽃향기 흐드러진 방자산에서 뻐꾸기 소리 뻐-꾹, 뻐-꾹,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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