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맹자(孟子)는 인간에게 타고난 천성 중에 4가지 성품을 가지고 있으니, 첫째가 惻隱之心 (불쌍히 여기는 마음), 두 번째가 羞惡之心(부끄러워 하는 마음), 세 번째가 辭讓之心(남에게 양보하는 마음), 네 번째가 是非之心(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 즉 인(仁) 의(義) 예(禮) 지(智)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라도 없으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고 말했다. 아무리 말세에 살아도 지성인이면 모든 것을 다 지키고 살아가진 못하더라도 부끄러워 할 줄은 알아야 한다. 배우고 깨달음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많이 배울수록 부끄러움을 많이 느낀다. 부끄러움을 알 때 사람이 되지만 부끄러움을 모를수록 짐승처럼 되어 간다.

노벨문학상 후보대상자로 전국민에게 알려진 고은 시인은 최영미 시인이 폭로한 것처럼 “EN선생은 젊은 여자만 보면 괴물이 된다.” 고 쓴 "Me too" 로 문단의 폐륜아로 낙인 찍혔다. 소위 한 분야에 지도자에 해당되는 인물이 이 정도의 수준에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가 염치나 체면 또는 양심이라는 말을 쓸 때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아는 척도로 이해한다. 이것은 인간을 물리적 존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다. 도덕적이라는 말이나 윤리적이라는 말을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추상적 이해의 방법이다.

그 추상적 가치가 여러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구현될 때 우리는 책임적 존재로 이해한다. 우리는 흔히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냐? 인간이 돼야지라고 말하곤 한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은 추상적이며 책임적인 인간존재를 뜻한다. 우리가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것이 아니기에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번 "Me too"의 진행을 보면서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 동물의 세계에서나 봄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어느 분야에서든 안 그런 곳이 없다. 검찰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가정과 학교, 사회교육의 부재에서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인문학에 대한 소양이나 윤리의식은 사라진 우리 사회는 물질만능주의와 현실주의로 물든지 오래 되었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참된 교육이란 참된 스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숨소리도 크게 못 내고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은 야만이다. 권력과 돈이란 권력의 위선 아래 뻔뻔함을 감추어도 언젠가는 역사 앞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 야만이다. 이런 야만이 전 국민에게로 전이되고 있음은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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