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정/캐나다 사스카츄완 대학 조교수

다문화주의 정책을 취하는 캐나다는 수많은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보니 인종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차별에 대한 연구와 논의도 활발하다.

스스로 차별 반대자라 착각하는 사람들의 흔한 화법에 "내가 인종 차별 주의자는 아니지만" 이란 게 있다.

하지만 "이민자나 외국인들 때문에 우리 일자리가 줄어든다. 원주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는 범죄가 많아 무섭다. 캐나다 학교에서 유학생들이 쓰는 중국어가 너무 많이 들리는 것은 문제다' 등으로 이어지는 일상의 말들.

사람들이 말하고 글 쓰는 방식에 대한 연구인 담론분석에 따르면 여기서 화자는 실제로는 “~만”이전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이고 그 이후의 내용에 동의하는 것이다.

인종주의 혹은 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라는 사회구조는 거대한 담론 뿐 아니라, 인종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스스로에게 또 다른 사람에게 보이게 하는 이런 일상의 언어를 통해서, 그 작동의 미묘함과 일상성에 의해서도 지속된다.

따라서 우리가 성찰해야 할 것은 구조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그런 말의 일상성과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대개 화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일이라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의도적이라거나, 인종 차별주의자라는 얘기는 아니다.

마침 연구년을 서울에서 보내고 있는 시기라, 한국의 미투 운동과 관련한 다양한 보도를 접하고 지인들과 대화 할 기회가 있었다.

사회 언어학자이자 영어교육학자인 내게 흥미로웠던 건 일부사람들에게 '미투 운동'과 '진보'가 대치되는 것처럼 비춰지는 대목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미투 운동을 지지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진보진영이 공격받는 계기가 될까 두렵다"는 말은 앞서 예를 든 비판적 담론분석 연구의 관점에서는, 화자가 실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미투 운동이 아니라 내가 속한 혹은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안전임을 나타낸다.

물론 화자 자신도 이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어떻게 구조화된 권력 속에서 개인의 인권보다 집단의 이익이, 대개 여성의 영역으로 인식되는 젠더 문제 보다는 남성의 영역으로 인식되는 정치권력이 더 우위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별한 비판적 성찰이나 교육의 기회가 없다면, 이런 구조 속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개인의 의식은 남녀 불문하고 그런 집단의 구조적 의식을 반영한다.

진정한 진보라면, 미투 운동이 정적에게 이용 당할까 염려하지 말고, 그들은 더 심한데 왜 우리만 비난받아야 하느냐는 식의 방어적인 자세보다는 당당하게 “우리는 진보인데 더 더욱 우리 내부에서 이런 일이 있어선 안된다. 미안하다. 진보진영에서 조차도 이런 사례들이 나오는 것 만 봐도 우리사회에서 권력에 의한 성 차별이나 성 폭력이 얼마나 구조화 된 문제인지, 그래서 그 구조 속의 모든 개인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의식개선에 대한 교육과 구조 개선에 대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 하고 미투운동은 그 촉발점이 될 것이다. 우리가 앞장서겠다. 도와 달라."
이렇게 구조화된 권력으로서의 젠더 불평등해소와 보다 평등한 구조를 만드는데 주도권을 가지고 가면 어떨까?

사석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지인이 "왜 진보는 늘 더 도덕적이어야 하느냐, 희생을 강요 당해야 하느냐" 며 "그래서 지금의 일들이 일부에 의해 정치적으로 불합리하게 악용될까 걱정된다"고 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못 따더라도 페어플레이 하는 게 중요하냐, 규칙을 좀 어기더라도 메달을 따는 게 중요하냐의 차이인데, 이기는 게 더 중요해져 버리는 순간 상대와 나의 구분은 없어져 버리고 더 거칠게 반칙할 줄 아는 쪽을 이길 수 없게 된다. 상대의 규칙으로 경기를 하기보다 게임의 규칙을 나에게 유리하게 바꿔야한다.

그렇게 새로운 규칙으로 경기하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더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진보’가 할 일이고, 그렇기에 '진보'가 어려운 것이고, 그러나 또 그렇기에 더 가치로운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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